진씨커 공동창업자인 예성혁 대표(왼쪽)과 허준석 의료책임자(고려대 안암병원 정밀의학센터장)가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진씨커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혈액 속 극미량의 암 유전자를 탐지해, 자칫 놓칠 수 있는 초기 암을 잡아내면 환자 치료 예후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조선비즈

1회용 주사기 하나 정도인 피 10mL만 있으면 수십가지 종류의 암을 진단한다. 영화가 그린 미래 세상이 아니다. 유전자 분석 기술과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혈액에 있는 유전자 조각을 찾아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바로 액체생검 기술 얘기다.

액체생검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암을 진단하려면 조직생검을 해야 했다. 암이 생겼다고 의심되는 장기 조직의 일부를 떼어내,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환자는 고통스럽고, 감염이나 내부 출혈 위험이 있다. 종양 위치나 크기, 환자 연령과 상태에 따라 검사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다.

액체생검은 조직생검에 비교하면 위험부담이 적지만, 진단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종양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유전자 조각으로 초기 암을 진단하는 게 쉽지 않다. 진씨커는 액체생검의 한계를 유전자 연구와 치료를 획기적으로 바꾼 유전자가위 기술로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뭉친 기업이다.

예성혁 진씨커 대표는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IBS) 연구원 출신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 특허를 갖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돌연변이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도록 교정하는 효소 복합체다. 특정 유전자를 찾아 결합하는 리보핵산(RNA)에 절단 효소인 ‘Cas9′을 결합해 디옥시리보핵산(DNA)을 교정한다.

진씨커 임직원들이 서울 성동구 진씨커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비즈

◇유전자가위 접목, 미국 기술보다 10배 정확

혈액에는 종양세포에서 나온 유전자 조각인 순환 종양성 유전자(ctDNA)뿐 아니라 정상세포에서 나온 유전자 조각(cfDNA)도 있다. 초기 암은 크기가 매우 작다 보니, 혈액에 돌아다니는 ctDNA 양도 0.01% 미만 수준이다. 분석할 유전자가 워낙 적다 보니 기존 액체생검 방식은 극초기 암은 상대적으로 잘 탐색하지 못했다.

진씨커의 대표 제품인 ‘크리스핀셋 하모니(CRISPincette HARMONY)’는 초정밀 유전자가위 기술로 혈액 기반 암 진단의 정확도를 높였다. 진씨커는 유전자가위로 cfDNA가 차지하는 정상 체세포 유전자를 골라 제거하고, 돌연변이 세포 유전자만 남겼다. 이제 아무리 양이 적어도 암세포 유전자 조각이니 암을 진단할 수 있다.

예 대표는 “미국 기업들이 혈액 기반 진단으로 암세포를 검출하는 민감도가 0.1% 수준이라면 우리 제품은 0.01%로 10배 뛰어나다”고 말했다. 민감도는 질병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정확도를 말한다. 진씨커의 이 기술은 한국과 미국·유럽·일본·중국에 특허 등록됐다.

공동 창업자인 허준석 진씨커 의료책임자(CMO)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허 CMO는 고려대안암병원 정밀의학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는 ”초기 암을 잡아내면 환자 치료가 더 용이하고, 암을 적극적으로 예방,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씨커는 고려대안암병원 검진센터를 시작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예 대표는 “중국과 일본 건강검진센터로 제품 수출을 앞두고 있다”며 “일본 대학병원과 공동 임상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씨커 임직원들이 서울 성동구 진씨커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비즈

◇”범부처 사업단 인정, 투자 유치에 큰 도움”

진시커는 제품 상용화에서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물밑 지원을 크게 받았다. 진씨커는 범부처 사업단이 주관하는 국책과제 수행기업으로 선정돼 의 ‘액채생검 활용 암진단 체외진단기기 핵심기술 개발’에 지원을 받았다. 진씨커는 범부처 사업단으로부터 연간 4억원씩 3년간 12억원을 지원받았다.

예 대표는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무형의 지원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단 지원은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고, 이는 외부 투자 유치와 국내·외 네트워킹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허 센터장은 영세한 초기 스타트업들은 규제 기관과의 소통, 시장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했다. 범부처 사업단이 이 문제를 해결할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는 것이다. 그는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전 주기에 걸쳐 밀착 관리와 지원을 받아 상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허 센터장은 “이제 진씨커가 실제 암 건강검진 임상 현장에서 데이터를 쌓아가며 기술과 가치를 증명할 때”라며 “정밀의학을 실현해 더 많은 환자를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