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메디컬아이피 사무실에서 박상준 대표가 수술 부위를 보여주는 증강현실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뒤 모니터 화면에 두개골 영상에 내부 수술 부위가 같이 보인다. 인공지능으로 평면 MRI 영상을 3D로 구현했다./이태경 기자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인 박상준 교수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 외과 의사들의 고충을 많이 들었다. 외과 의사는 수술 전에 영상의학과에서 촬영·판독한 영상을 보고 수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엑스레이와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찍은 영상은 흑백 2차원이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야 늘 영상을 보니 쉽게 이해하지만, 정작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들은 영상을 실제 인체 내부와 바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의사들은 영상 판독 결과물을 다시 해석하는 별도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잘 해내지 못하면 수술 사고가 난다. 복잡한 수술은 수술 도중에도 엑스레이를 자주 촬영하는데, 이렇게 방사선을 자주 쏘다 보면 의사들의 손에 피부암이 생기기도 한다. 박 대표는 “의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안전한 영상 장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서울대병원 의료기기혁신센터 부센터장을 지내면서 이 문제의 해결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1호 원내 스타트업인 메디컬아이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평면 MRI영상을 3D로 구현

박 교수가 메디컬아이피를 창업해 개발한 메딥프로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을 이용한 수술 내비게이션이다. 의료영상을 안내 지도로 이용해 수술을 안내하는 장비다. 증강현실이란 실제 사물을 볼 때 그 위에 가상 이미지을 덧씌워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기술이다. 수술 내비게이션에 증강현실을 적용한 것은 메딥프로가 세계 최초다.

메딥프로 AR 소프트웨어를 병원 전산시스템에 설치하면 MRI로 촬영한 환자의 환부가 인공지능(AI)을 통해 AR로 재구성된다. 2차원 평면의 MRI 영상이 고글이나 태블릿PC에 실제 환부와 같은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때 구현된 3차원(3D) 영상의 오차는 1.9㎜에 불과하고 인체 구조물 인식정확도는 96%에 육박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조인증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제한적 의료 기술로도 선정됐다.

수술 전 단계(Pre-operation)에서 수술 의사는 MRI와 메딥프로 AR을 함께 보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수술 방법과 경로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또 수술을 받을 환자도 메딥프로 AR을 통해 환부의 상태와 수술 방향을 설명 듣고 이해하기 쉽다. 메디컬아이피는 메딥프로 AR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수술 난이도가 가장 높은 뇌종양을 적응증으로 등록했다. 메딥프로 AR은 뇌종양 외의 다른 질환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어 앞으로는 적응증을 넓혀갈 계획이다.

수술 외의 범위로 활용도를 넓히면 의대생이나 전공의에게 교육하는 용도로도 쓸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서울대·강원대·제주대 의대에 교육용으로 납품됐고, 서울대 의대는 올해도 재구매했다고 한다. 또 종교적 문제로 카데바(해부실습용 시신) 활용이 불가능한 이슬람권이나 아프리카로도 수출되고 있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그는 “메딥프로 AR을 카데바를 대체·보완할 의대생·간호대생용 해부 교육용 소프트웨어로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메딥프로 AR이 MRI 기반이라면, 메딥프로 스트레오는 내시경을 기반으로 갑상선 수술에 쓰이는 AR 의료기기다. 메딥프로 AR과 메딥프로 스트레오 모두 올해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사업단의 10대 대표 과제 성과로 선정됐다. AR 기반의 의료기기는 세계 최초라 선례가 없는 성과인 만큼 비교군이 없어 인증 획득이나 인허가 과정이 매우 까다로웠다. 박상준 메디컬아이피 대표는 사업단이 규제 당국과 회사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 어려움을 크게 완화했다고 말했다.

박상준 메디컬아이피 대표는 "앞으로는 엑스레이 영상을 3D 입체 컬러 영상으로 변환하는 기술에 도전하겠다”며 "어려울수록 회사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도전 과제"라고 말했다./이태경 기자

◇”도전 어려울수록 회사 정체성에 부합”

박 대표는 “2차원 흑백 영상을 3차원의 컬러 입체로 만드는 AI 소프트웨어 회사가 곧 메디컬아이피의 정체성”이라며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을 앞으로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단이 뇌종양 치료에 대한 쓰임새만으로 메딥프로 시리즈를 대표 성과로 선정해 줬다기보다는,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비전과 공간 컴퓨팅으로의 확장 가능성 등을 인정해 줬기 때문에 선정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메디컬아이피는 앞서 3D프린팅을 하는 아낫델도 출시했다. 실물과 거의 유사한 촉감과 형상으로 인체 장기를 입체로 인쇄하는 장비다. 수술할 부위를 입체로 보면서 수술계획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메딥프로 AR과 같은 맥락이다. 회사에 따르면, 아낫델을 활용하면서 서울대·충북대병원의 뇌종양 수술 64건 중 12건의 수술계획이 변경됐다.

박 대표는 “3D프린팅도 의료 현장의 호응을 얻었지만, 접근성은 AR이 더 좋은 만큼 파급 효과도 더 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메디컬아이피가 메딥프로 시리즈와 아낫델 등을 개발하면서 나온 특허는 77건, 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은 122편에 달한다. “의료 AI 업체로는 최다 연구 성과일 것”이라는 박 대표의 자신감이 허언이 아닌 이유다.

메디컬아이피의 향후 개발 계획도 회사의 정체성 선상에 있다. 박 대표는 “메딥프로 AR은 의료와 공간 컴퓨팅의 접목을 실증한 결과물”이라며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앞으로는 엑스레이 영상을 3D 입체 컬러 영상으로 변환하는 기술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엑스레이를 AR로 변환하는 것이 MRI나 내시경보다 훨씬 어렵다. 박 대표는 어려울수록 회사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도전 과제라고 본다. 박 대표는 “임상적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테크(Tech·기술) 기업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면서 “기술이 상용화하기까지 어떻게든 살아남는 생존을 신경 쓰고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