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합병증 /조선DB

살을 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음식을 덜 먹거나,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 된다.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음식을 덜 먹게 하는 비만치료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식욕 억제를 뛰어넘어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비만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인체가 저절로 에너지 소비를 늘리도록 유전자를 개조하는 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28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인 리제네론은 앨라일람과 함께 ‘리보핵산(RNA) 간섭’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든다. 그런데 RNA 중 일부 짧은 가닥은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다른 RNA와 결합해 기능을 차단한다. 이를 RNA 간섭이라고 한다.

두 회사는 ‘게으름 유전자’라고 불리는 GPR75를 표적으로 한 RNA 가닥을 개발하고 있다. 리제네론은 지난 2020년 영국·미국·멕시코인 약 65만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GPR75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작동하지 않으면 체질량지수(BMI)가 낮고 살이 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간섭 RNA로 게으름 유전자를 차단하면 영원히 살 찌지 않는 체질로 바꿀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앨라일람은 복부 비만을 일으키는 INHBE 유전자에 RNA 간섭으로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INHBE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사람은 엉덩이 대비 허리둘레가 작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보다 날씬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허리둘레가 엉덩이둘레와 비교해 크다는 것은 복부비만이 있다는 뜻이다.

복부 비만은 심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과 직결된다. 앨라일람은 올해 말 후보물질을 공개하고, 내년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푸시칼 가그 앨라일람 최고의료책임자(CMO)는 “INHBE 표적 치료제는 건강에 해로운 특정 지방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암젠은 ‘건강한 비만’ 유전자로 불리는 FAM13a를 겨냥한 RNA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FAM13a는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린에 작용하는 유전자다. 앞서 연구에서 이 유전자가 지방세포에서 덜 작동하면, 인슐린 분비가 줄고 당뇨병과 같은 대사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암젠은 이 유전자가 충분히 발현되도록 하는 RNA 간섭 기술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도 유전자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미국 메사추세츠주 렉싱턴에 있는 연구개발(R&D) 센터에 RNA 간섭 기술 연구를 위한 9300㎡(약 2800평) 규모의 연구센터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2021년 RNA 치료제 분야에서 선두 업체인 다이서나 파마슈티컬을 33억달러(약 4조 4800억원)에 인수했다.

이론적으로는 유전자를 개조한 비만치료제가 나오면 인류는 앞으로 살이 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업계는 유전자 치료제 기술이 비만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의료 전문지인 스탯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비만 신약 115종 가운데 RNA 간섭 기술을 적용한 비만 신약은 4종에 그친다.

앨라일람이 시도하는 INHBE 유전자 치료제는 아직 작동 원리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INHBE 유전자 연구는 선천적으로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때 기대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다.

가천대 의대 내분비내과의 이대호 교수는 “최근 대세인 위고비와 젭바운드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비만치료제는 2006년부터 시장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 받았지만 RNA 간섭 기술은 이제 태동기에 접어든 상태”라며 “새 기술이 의료 현장에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GLP-1 비만치료제도 한 달에 한 번 주사로 체중 감량 효과를 유지하는 신약이 개발 중인 만큼 유전자 비만 치료제가 GLP-1 비만 치료제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조지 얀코풀로스 리제네론 최고과학책임자(CSO)는 “GLP-1 비만 치료제가 식욕을 억제해 비만을 치료하지만, RNA 간섭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치료제는 에너지 소비를 늘린다”며 “유전자 비만 치료제가 더 바람직한 방식의 체중 감량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역시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GLP-1의 유사체로 식욕을 억제해 비만을 치료한다지만, 아직 작용 원리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