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치료제에서 비만치료제로 진화한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가 심부전 치료제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8일(현지 시각) 노보노디스크는 애틀란타에서 열린 미국심장학회(ACC) 연례 학술대회와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6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위고비가 심박출계수 보존 심부전증(HFpEF)에 약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심부전은 크게 심박출계수 보존 심부전과 심박출계수 감소 심부전으로 나뉜다. 그중 보존 심부전은 심장의 좌심실 수축 기능을 측정하는 지표인 ‘좌심실 박출률’이 정상 수치인 55~60%에 이르지 못하고 50% 수준에 머물러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질환이다. 박출률은 심장 기능의 중요한 척도로 심장이 뛸 때마다 심장이 수축해서 뿜어내는 혈액의 비율이다. 박출률이 낮으면 심장이 피를 충분히 뿜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전체 심부전 환자의 40% 이상이 보존 심부전에 해당한다고 의료계는 보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에도 비만과 보존 심부전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 회사는 올초 두 번의 임상시험의 결과를 미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고 보존 심부전을 새로운 적응증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위고비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가 주 성분이다. GLP-1은 혈당이 떨어지면 췌장이 인슐린 분비를 늘리도록 하는 호르몬이다. 위에서 장으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시간을 늦춰 식욕을 조절한다.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체중 감소 효과를 인정받아 비만 치료제로 널리 쓰이게 됐다.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를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에 대한 임상 3상도 하고 있다. 비만은 지방간을 일으키고, 지방간이 악화하면 지방간염으로 이어진다. 지방간염은 간 섬유증을 일으키고, 섬유증이 간경변으로 악화하면 간 이식이 필요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는 비만을 잡으면 간경변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당뇨병·비만·지방간염에 이어 이제는 심부전까지 위고비의 적응증을 넓히려는 것이다. 위고비는 비만 치료제로 크게 각광받았지만 여전히 비용이 많이 들고 보험 적용도 더디게 이뤄졌다. 노보노디스크로서는 비만 외에 추가 적응증을 확보함으로써 위고비가 비용 대비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강화할 수 있고, 보험 적용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당뇨 앓고 있는 심부전 환자들 증상 뚜렷이 개선
노보노디스크가 보존 심부전를 지목한 것은 보존 심부전도 비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보존 심부전의 주요 원인으로 비만이 지목되는 가운데, 미국 보존 심부전 환자의 80% 이상은 과체중 또는 비만인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질병이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도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이번 임상에서 당뇨병을 앓고 있는 616명의 보존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1년간 임상시험을 했다. 시험에 착수하기 90일 전 당화혈색소가 10% 미만이면서 당뇨병을 진단받았고 체질량지수(BMI)가 30kg/㎡ 이상인 보존 심부전 환자들을 중심으로 모집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69세로 남성이 55.7%, 여성이 44.3%로 나타났다. 평균 BMI는 36.9kg/㎡였다. 이들을 위고비 주 1회 복용군과 위약 복용군으로 무작위 배정해 52주 동안 임상 시험을 했다.
임상시험 결과 심부전 환자의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을 측정하는 캔자스시티 심근병증 설문지 임상요약 점수(KCCQ-CSS) 테스트에서 위약을 복용한 환자보다 위고비를 복용한 환자가 평균 7.3점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테스트는 100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심부전 증상이나 그에 따른 신체 활동의 제한이 적다는 것을 뜻한다. 당뇨병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임상시험에서 위약 복용군보다 7.8점 높았던 것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 체중 감소 외의 다른 원리 작용하는 듯
위고비를 복용한 환자들은 위약 복용군보다 체중이 6.4%p(포인트) 감소했다. 당뇨병이 없는 환자에게서 나타난 체중 감소량보다는 약 40% 효과가 떨어진다. 하지만 심부전 개선 효과의 크기는 두 시험에서 비슷했다. 위고비가 체중 감소만이 아니라 심부전에도 약 효과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 임상에 참여한 미국 미주리대 캔자스시티캠퍼스 의대 교수이자 세인트 루크 헬스 시스템의 연구 담당 부사장 미하일 코시보로드(Mikhail N. Kosiborod)는 이 결과를 두고 “체중 감소만이 유일한 치료 효과가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며 “체중 감소로 보존 심부전이 나았다면 체중 감소가 적은 만큼 심부전 치료 효과도 적었어야 했는데, 임상 시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라이 릴리의 비만치료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도 보존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릴리는 위고비와 함께 비만 치료제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젭바운드는 원래는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크다고 평가돼 왔다. 반면 보존 심부전에서 더 큰 효과를 낼 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임상 시험에서 치료 효과 가능성을 발견한 것보다 부작용 위험은 전반적으로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약을 복용한 환자의 5.9%가 심부전으로 입원하거나 응급실을 방문했지만, 위고비 복용군에서는 이 비율이 2.3%에 불과했다. 사망자도 위약 복용군에서 10명 중 4명이 심장질환으로 숨지는 데 비해, 위고비 복용군에서는 6명의 사망자 중 1명만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위약을 복용한 환자의 13.1%가 심장 질환을 경험한 반면, 위고비를 복용한 환자의 6.1%뿐이었다.
다만 메스꺼움, 구토와 같은 위·장관 증상은 위약 복용군의 2.9%가 위·장관 장애로 인해 복용을 중단했는데, 위고비 복용군에서 6.5%로 더 높았다. 이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계통 약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작용으로 꼽힌다.
참고 자료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24), DOI : https://doi.org/10.1056/NEJMoa2313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