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료 현장에서 두렵다고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법정 감염병인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의 문제입니다.”
고려대 안암병원의 윤영경 감염내과 교수는 21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한국화이자제약이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최후의 보루’로 꼽히던 항생제 카바페넴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늘면서 글로벌 보건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우려했다.
진료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인 카바페넴에 내성을 가진 세균에 감염된 사례는 2022년 3만건으로 5년전인 2017년 5700건에서 크게 늘었다.
이 장내세균은 정상인에게는 큰 문제가 없는 세균이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중환자들에게는 폐렴·패혈증으로 발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지난 2022년 이 세균에 감염돼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균혈증으로 숨진 환자는 518명으로 2~3년새 크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문제는 CRE가 다제내성균이란 사실이다. 흔히들 ‘슈퍼 박테리아’라고 부르는 다제내성균은 3가지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을 뜻한다. 영국에서는 다제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한 인구가 암 환자보다 많아질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이 세균은 암 환자 등 중환자에게 쓰이는 최후의 항생제 카바페넴에 내성이 있어 치명적이고 대안도 없는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지난 2019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자료에 따르면, CRE는 환자 1인당 1억 4130만원의 추가 의료비용을 발생시켜 다제내성균 질환 가운데서도 추가 의료비 부담이 가장 큰 질환으로 꼽혔다.
이날 화이자가 공개한 자비쎄프타(성분명 세프타지딤 아비박탐)는 최근 다제내성균과 전쟁을 벌이는 현장 의료진에게 주목받고 있는 새 항생제다.
항생제는 오래, 많이, 자주 쓸수록 세균에 내성이 생긴다. 감염내과 전문가인 이동건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지난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1년에 새 항생제가 10개씩 나와 이름도 외우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1년에 1~2개도 나올까 말까 한다”며 “제약사들이 그만큼 항생제 개발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바페넴은 1985년에 개발돼 4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항생제 사용이 크게 늘면서 항생제 관리가 미흡해진 점도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을 부추겼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2010년 미국 감염학회와 함께 2020년까지 항생제 내성과 맞설 10가지 새 항생제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2010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자비쎄프타 역시 2010 프로젝트의 산물로 지난 2015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개발된 미국 머크(MSD)의 저박사(성분명 세프톨로잔 타조박탐)는 2017년 국내에 도입된 뒤 2022년 10월부터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됐다. 지난 1일부터 자비쎄프타 역시 급여 목록에 등재되면서 점점 늘어나던 다제내성균에 긴장하던 한국 의료계에서도 한 번 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윤영경 교수는 “2017년 저박사가 국내 도입됐을 당시에도 획기적이라는 평이 있었다”며 “자비쎄프타는 카바페넴의 항균 범위를 더 확대했다고 볼 수 있어 두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하며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비쎄프타가 이번에 국민건강보험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콜리스틴(성분명 콜리스틴메탄설폰산나트륨)이 주로 사용됐다. 지난 1960년대 개발됐지만 한동안 쓰이지 않다가 카바페넴에 내성 문제가 생기자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이동건 교수에 따르면, 콜리스틴이 한동안 쓰이지 않은 이유는 강력한 독성 때문이다. 신장에 무리를 주고 드물게는 호흡 곤란까지 일으켜 사용 시 환자나 환자 가족에게 고지가 필요한 약물이었다.
화이자에 따르면 자비쎄프타는 카바페넴에 내성을 가지는 요인 4가지 중 3가지에 대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가지 요인에 대해서도 다른 약과 함께 쓸 경우 부분적인 효과를 보였다. 다만 이런 병합 제재는 당국으로부터 아직 허가를 받지 못했다.
임상을 통해 카바페넴의 제너릭인 메로페넴에 비해 효능상 열등함이 없었고 안전성 측면에서도 생후 3개월 아기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고 증명됐다. CRE뿐 아니라 녹농균 등 다제내성 그람음성균 감염에 따른 요로감염, 복강감염, 폐렴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균에도 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