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456040)와 한미약품(128940)그룹의 통합을 반대하며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자의 장남과 차남인 임종윤·종훈 사장이 제기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사건의 법정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원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4시 임종윤 사장 측이 지난달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한 첫 심문을 열었다.
임종윤·종훈 한미약품 사장 측은 이날 “이번 신주 발행은 회사의 경영상 목적이 아닌, 특정한 사람들의 사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신주인수권과 주주 권리를 침해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두 형제는 어머니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주도한 OCI그룹과의 통합에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임종윤·종훈 사장 측 법무대리인은 법무법인 지평 윤성원 변호사, 광장 성창호 변호사와 문호준 변호사 등이 맡았다. 이날 법정 원고석엔 임 사장 측 법률 대리인인 지평과 광장 변호사들이, 피고석엔 한미사이언스 측 법률 대리인인 화우와 김앤장 변호사들이 앉았다.
한미사이언스는 OCI홀딩스와 통합 절차 중 하나로 한미사이언스 보통주 643만주를 주당 3만7300원에 OCI홀딩스에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2400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임종윤 사장 측 변호인단은 “이번 한미사이언스의 신주 발행은 회사의 경영상 목적이 아닌 특정한 사람들의 사익을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방식의 신주 발행은 법에 어긋나고, 두 회사의 통합이 사실상 합병임에도 주주총회에서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 사장 측 변호인단은 특히 지난해 법원이 이수만 전 SM(에스엠(041510))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카카오(035720)를 상대로 유상증자·전환사채 발행을 막아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사례를 들며 한미사이언스 신주 발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부는 SM 경영진이 ‘긴급한 자금 조달과 사업확장’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카카오에 신주·전환사채를 배정·발행할 필요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는데 이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임종윤 사장 측 변호인단은 “당시 이수만씨 측 핵심 주장 중 하나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려면 신중하고 깊이있게, 체계적인 검토를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었고,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사이언스 측이 깊이있고 충분한 검토를 거쳐 OCI와의 통합을 결정한 것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재 한미그룹 측이 제시한 자료에서는 이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이는 경영권 내지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뤄진 것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법무법인 화우 이민걸, 정진수, 유승룡 변호사 등을 앞세웠다. 한미사이언스측은 OCI 그룹과의 통합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통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결정됐고 주장했다. 또 이는 사익 목적이 아닌 기업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주장도 강조했다.
한미사이언스측 변호인은 “채권자 측은 송영숙 회장이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찬성했고 채무자 회사는 신주발행 공시 전까지 경영권 분쟁이 없다고 공시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측 변호인은 또 “한미약품은 자본 확충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면서 “제약 바이오 사업에서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한데 자체적인 자금 조달만으로 한미약품이 계속 늘어나는 R&D 비용을 감당하긴 힘들었다”며 “안정적인 재원 확보는 시급성 여부를 떠나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번 소송에 당사자외 가담한 보조참가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보조참가인이란 원고나 피고와 이해관계가 있을 때 어느 한쪽의 승소를 돕기 위해 소송에 참가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임종윤 사장 측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는 주식회사 케일럼엠, 주식회사 새솔, 법무법인 김앤전 측에서는 이날 심문에 불참했다. 한미사이언스 측 보조참가인은 OCI홀딩스는 이날 심문에 참가했다.
OCI측은 이번 가처분 신청 결과가 향후 한미사이언스 주식 가치와 OCI홀딩스와의 합병,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지형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면서 소송전에 가담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액주주 신분으로 보조참가 허가를 받은 김철 법무법인 이강 변호사는 “소액주주 입장에서 볼 때 한미사이언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면서 “신주 발생은 위법성이 있어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종윤·종훈 형제 측 주장이 인용될 경우 OCI홀딩스는 송영숙 회장은 양도 지분 외 추가 신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계획했던 합병 방안이 막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달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벌어질 표 대결을 위한 지분 매입 경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한미사이언스의 손을 들어줄 경우, OCI와 한미약품 그룹 간 통합 불확실성 우려는 해소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임종윤 사장 측 채무 관계자, 개인 회사 등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최근 3월 예정인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이사 선임 주주 제안을 제출했다. 주주 제안은 한미사이언스 이사에 임종훈 사장,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 등 4인을 선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송 회장 측이 확보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송 회장 자신이 보유한 12.56%, 임주현 사장이 보유한 7.29%, 친인척 보유분 4.48%, 가현문화재단이 소유한 4.9%, 임성기재단 3.0% 등 32.23%로 구성된다.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두 형제 지분과 가족을 합쳐 24.64%, 우호 지분인 디엑스앤브이엑스 0.41%를 더해 25.05%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임성기 명예회장과 고교 동창으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지분 12.15%과 국민연금 보유분 7.38%, 소액주주 21%가 향후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개인 주주 중 최대 지분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12%를 보유한 신동국 회장의 결정이 주효할 수 있다.
신 회장은 임 명예회장의 고등학교 후배로 한미약품이 과거 동신제약을 인수할 때 신 회장이 동신제약 주식 60만주 가량을 한미약품에 장외 거래로 넘긴 일이 있다. 현재까지 신 회장은 양측에 대해 ‘중립’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7.38%를 보유 중인 국민연금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유지 중이라 경영권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 입장을 보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재판부는 한 차례 더 기일을 열어 양측의 주장과 근거를 살피기로 했다. 다음 심문 기일은 내달 6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