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이동건 교수 제공

부산시는 지난해 감염병 관리 강화 차원에서 해운대 백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 병원 입원 환자들 사이에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 감염이 크게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카바페넴 장내세균은 카바페넴이라는 항균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다. 카바페넴은 여러 가지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어 국내 의사들이 최후에 쓰는 항생제로 통한다.

장내세균이란 장 속에 사는 세균이다. 정상인은 감염돼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환자처럼 면역이 떨어진 상태에선 사정이 다르다. 단순한 감염만으로도 폐렴 패혈증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부산시는 조사 결과 이 병원에 다제내성균이 유행하는 건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부산 등에서 다제내성균 감염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카파베넴이 듣지 않는 독한 내성균이 병원에 퍼지는 상황은 부산만의 상황은 아니다. 이미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중환자실도 매일 항생제 내성균과 전쟁을 벌인다.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면, 항생제 내성균은 그만큼 늘어난다. 이동건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코로나19 유행 때 항생제 처방을 관리하던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코로나19 감염환자 환자 관리에 투입되다보니 중환자실과 암환자 입원실의 항생제 처방이 크게 늘었다”며 “한국도 항생제 내성과의 전쟁에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국내 감염질환 연구와 진료의 권위자이다. 면역이 떨어진 중환자의 감염질환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서울아산병원 같은 규모가 더 큰 병원도 이 이사장이 일하는 혈액 암병동의 감염 관리를 벤치마킹하러 방문할 정도다. 감염질환에 대해 쓴 국내외 논문은 300편에 이른다. 다제내성세균과 진균 조기진단 특허도 갖고 있다.

이 이사장은 “항생제 내성은 의사만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흔히 항생제 내성 문제를 얘기할 때 ‘동네 의사’의 항생제 처방 남용을 문제로 지적한다. 간단한 목감기에도 항생제를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많은 국민들의 몸에 내성이 생겼다는 논리다. 하지만 의사가 처방하는 항생제보다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생선을 생산하는 농축산가와 양식장에서 쓰는 항생제 양이 훨씬 많다.

이 교수는 “병원 처방 항생제는 정부 통제를 받지만, 농축산가 항생제는 그렇지 않다”며 “항생제 내성은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항생제 관리를 위한 감염내과 전문의 확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감염내과는 비선호 과목 중에 하나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업무가 몰리다 보니 전공의는 물론 전문의에서도 이탈이 많았다.

이 교수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의대 정원을 2000명을 더 늘린다고 감염내과로 전공의들이 지원할 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서울성모병원 감염관리실장 및 내과 과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를 이달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항생제 내성은 왜 생기는건가.

“폐렴을 고치려고 A라는 항생제를 쓴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항생제가 폐렴 원인균뿐 아니라, 내 장 속에 있는 유익균들도 죽인다. 문제는 항생제가 잘 듣는다고 계속 쓰면 내 위장 속에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들만 남아있게 된다. 이 내성균들이 계속 자라서, 위장이 아닌 곳에 감염을 일으키면 결국 이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하지만 꼭 필요한 항생제를 적절한 기간만 사용하게 관리하면, 유익균들도 살아날 수 있으니 항생제 내성은 안 생긴다.”

-내성균에도 잘 듣는 항생제를 개발해서 쓰면 되지 않나.

“미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은 10여 년 전 2020년까지 항생제 신약 10개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감염학회가 국립보건원(NIH)과 협력해 전세계 제약회사들에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개발한 항생제 중에서 국내에 들어온 건 미국 머크(MSD)의 ‘저박사’와 화이자의 ‘자비세프타’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유럽에서는 5~6년 전부터 쓰던 약들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항생제를 개발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

-의사가 자발적으로 항생제를 줄일 수는 없나.

“감염 질환은 만성 질환과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만성질환은 몸의 기능이 천천히 떨어져서 생기는 병이라면, 감염 질환은 몸에 불이 난 상태다. 집에 불이 나면 소방수를 동원해서 빠르게 불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불을 꺼야 하는 소방수는 물을 많이 쓰고 싶을 수밖에 없다.

일반인은 불이 덜 나게 예방 차원에서 백신을 맞는다. 하지만 중환자의 경우 항생제를 써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는 폐렴으로 사망할 수도 있어서 입원과 동시에 항생제를 처방한다. 단순히 ‘항생제를 안 쓰면 되지’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병원이 항생제를 관리하면 안되나.

“병원에만 맡기기엔 감염 관리가 쉽지 않다. 감염 환자가 입원한 병실은 감염 관리 차원에서 소독제로 바닥과 벽을 닦는다.

그런데 코로나와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 바닥뿐 아니라 공기를 순환하는 시스템도 감염 관리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감염 관리는 병원에 책임을 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항생제를 쓰지 않게 병원을 규제할 방법은 없나.

“병원은 규제를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병원이 자선단체가 아니다. 의료 산업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 항생제 내성 관리는 추가 비용이 들고, 수익성은 떨어지는 일이다. 항생제를 쓰면 수익이 더 나는데, 쓰지 말라고 하면 어떤 병원이 동의하겠나.

정부가 항생제를 줄이는 노력을 하는 병원에 항생제 사용 관리비를 지급하고, 감염 전문가가 항생제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의료재정은 한정적이고 내성균과 싸울 신약도 들여와야 한다.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전문가 집단이 우리 사회의 항생제 사용을 줄이도록 만들고, 그렇게 항생제를 줄여서 남은 건강보험 재원으로 항생제 신약을 들여오면 되지 않겠나. 문제는 한국에 감염 전문가 풀 자체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감염 전문가가 얼마나 부족한가.

“서울성모병원에는 병상이 1360개인데 감염내과에 전문의 6명, 펠로우 1명뿐이다. 비슷한 규모의 미국 병원에는 감염내과 전문의 20명에 이들이 각각 1명의 펠로우를 데리고 다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의 감염내과 전문의는 한국의 2.1배, 미국은 한국의 6.5배 정도다. 미국의 6분의 1의 감염내과 의사 인력이 환자를 본다는 뜻이다. 우리가 최소한 일본만큼 하려면 감염내과 의사 수를 2배는 늘려야 한다. 하지만 항생제 내성 문제는 사회가 모두 나서야 할 문제다.”

-사회가 모두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한가.

“항생제 내성은 항생제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인데, 항생제를 잘못 쓰는 집단이 의사 말고도 많다. 사람에게만 쓰는 항생제만 항생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의사 외에도 수의사와 한의사에게도 항생제 처방권이 있다.

축산가와 양식장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항생제를 쓰는지 알고 있나.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준다. 사람은 아파서 항생제를 준다면, 축산 농가와 양식장에서는 ‘아프지 말라’고 항생제를 준다. 아프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항생제를 쓰면 생산수율이 올라간다. 문제는 이렇게 농가에서 쓰는 항생제 양을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 돼지의 항생제 남용은 왜 문제인가.

“내성균이 축산품에 남아서 사람이 섭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먹은 소는 항생제 내성균을 보유하고 있다. 이 소를 도축한 쇠고기에 있는 내성균을 우리가 먹는 것이다. 농업 축산업 수산업에 종사자들도 항생제 사용량 줄이기에 동참해야 한다.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면, 내성도 줄어든다.”

-축산농가는 당장 상품 가치가 떨어질텐데, 어떻게 사용량을 줄일 수 있나.

“농가에서 쓰는 항생제 양이 100이라고 하면, 절반으로 당장 줄이라는 게 아니다.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항생제를 줄일 수 있는 적정 사용량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을 90으로 줄여도 생산량이 줄지 않는다면, 너무 과하게 썼다는 뜻이니 줄여도 되지 않겠나.”

-진단 기술이 발달하면 꼭 필요할 때만 항생제를 쓸 수 있으니, 내성도 줄일 수 있을텐데.

“한국은 감염병 진단 기술에서도 한참 뒤처져 있다. 암 진단 분야에 앞서 있는 것은 맞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에서는 다른 얘기다. 같은 패혈증 환자라고 해도, 원인균에 따라 써야 할 항생제가 다르다. 서울성모병원과 같은 대형 병원에서도 원인균을 알아내는 데 3~4일이 걸린다. 반면 미국은 5~6시간 안에 문제를 일으킨 원인균을 찾아낸다. 응급 패혈증 환자에게 어떤 항생제를 써야 가장 효율적일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사장 재임 기간 동안 세운 목표가 있나.

“다제내성균 항생제 신약을 빨리 도입할 수 있게 정부와 업계를 설득할 계획이다. 대한항균요법학회·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등 유관학회와 항생제 적정 관리 수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것만 이뤄도 한국이 항생제 내성 관리에 있어서 진일보 할 수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