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전공의가 의대 증원을 두고 ‘강대강’으로 대치하는 사이 의료 현장에 있는 중증 환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병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상반기 마케팅 심포지엄을 계획했던 제약사들도 난감하게 됐다.
16일 암환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다음주 수술을 앞둔 암 환자들에게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 일정에 영향이 있을 수 있으며, 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다시 연락한다’는 취지의 공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병원의 수간호사들은 입원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는 전공의 파업으로 후처치를 할 의료진이 부족하기 때문에 퇴원 시간이 늦어질 수 있고, 주말 퇴원은 힘들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중증 질환 환우회 인터넷 카페에는 불안에 떠는 환자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암 수술이나 조직 검사를 예정한 환자들은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전국 221개 상급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절박한 사람들이다. 한 암환자는 “제가 다니는 병원이 파업에 참여한다고 한다. 당장 다음 주 수술인데 어떡하느냐”고 했다. 이 환자는”21일 수술 일정이 잡혔는데, 당장 20일부터 병원을 비운다니 수술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환자는 “수술 일정을 물어보려고 병원에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며 “전공의들이 빠지면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퀄리티(질)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걱정된다”고 했다.
전공의 파업으로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수술과 항암제, 응급 치료다. 방사선과 치료는 전문의 지도 하에 방사선사가 집행하기 때문에 전공의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종양 조직검사도 전문의(교수)가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술이나 항암제 투여에 필요한 허드렛일을 전공의들이 하기 때문에 수술과 응급 치료는 어려워진다.
한국다발공수종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6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증증질환자연합회는 전날(15일) 입장문에서 “정부와 의사단체들은 환자 피해를 서로 전가하고 있다”며 “환자들은 극도의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날씨가 풀리는 2~3월 대학병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마케팅 심포지엄을 준비해 온 제약사들도 난감하게 됐다. 한국화이자제약, MSD(머크) 등이 3월 중 신제품 출시 관련한 심포지엄을 예고했으나, 전공의 파업이 현실화되면 취소가 불가피하다. 전공의의 빈 자리를 전문의와 교수들이 채워야 하기 때문에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병원장에 사직서 수리를 하지 않아서 전공의들이 근무를 계속 이어간다고 해도, ‘이 와중에 무슨 심포지엄이냐’는 분위기 될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심포지엄을 위해서 예약해 둔 호텔에 위약금이 어느정도 될 것인지 문의를 넣어둔 상황”이라며 “전액을 모두 지불해야 할 최악의 상황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