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그룹과 한미그룹의 통합으로 OCI그룹의 지주사인 OCI홀딩스는 한미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가 되고, 한미사이언스 측 주요 주주들은 OCI그룹 지주사의 1대 주주가 된다. 사진은 임주현 사장/조선DB

OCI그룹과 한미그룹의 통합은 국내 산업계에서 이례적인 경우다. OCI그룹의 지주사인 OCI홀딩스는 한미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가 되고, 한미사이언스 측 주요 주주들은 OCI그룹 지주사의 1대 주주가 된다. 국내 대표 신재생에너지업체로 재계 순위 38위(2023년 자산 기준)인 OCI와 한국의 5위권 대형 제약사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M&A(인수합병)가 아니라 대등한 기업결합에 합의한 것이다.

◇ 모녀가 주도한 합병

1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이번 협상은 이우현 OCI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작년 10월 이후 여러 차례 만나며 합의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신성장동력 사업을 모색해 온 OCI와 신약 개발 자금이 필요한 한미약품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이번 통합의 가장 중요한 고리는 한미약품 창업주 별세 이후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 납부 문제였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대표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라데팡스에 투자하기로 한 새마을금고가 지난해 7월 부실 논란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겪으며 투자를 철회하면서 일이 어려워졌다. 이후 라데팡스 측은 벤처캐피털(VC) IMM인베스트먼트와 KDB인베스트먼트와 손잡고,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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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그룹에 경영 자문을 맡았던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가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의 B씨를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으로 영입했지만, 경영개선 과정에서 한미 임직원들과 불협화음을 내고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이러는 사이 송 회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금융권에서 조달한 116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 대출 만기는 연달아 돌아오는 상황이었다. 당장 지난해 12월 농협은행과 교보증권 등에서 받은 대출 300억 원의 만기가 도래했다.

◇ 상속세 부담에 MBK 사태 이후 급물살

여기에 지난해 12월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고문 등과 손잡고 그룹 지주사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에 착수했다.

송 회장과 임 사장으로서는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의 적대적 인수에 뛰어든 작업을 목격하고 OCI와 손잡는 것을 굳혔다는 해석도 나온다.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사모펀드와 손잡으면 오히려 경영권이 더 불안해질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OCI와 한미사이언스 통합 작업은 작년 말부터 본격화됐고, 한 달여 만에 마무리까지 이뤘다.

송 회장과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모친)의 친분이 통합에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예술재단을 운영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지난 2017년 남편인 고 이수영 OCI 선대 회장을 지병으로 잃고, 승계를 하는 과정을 똑같이 겪었기에 송 회장과 공감대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와 OCI의 통합은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회사를 지키면서도 상속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복안이었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인 임종윤 사장이 “배제됐다”라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이 통합은 이사회 결의까지 끝났기 때문에 임종윤 사장이 개입해서 되돌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미와 OCI의 기업 결합 심사가 큰 문제가 없다. 양측은 지난해 거래 규모가 4000만원 정도로 거의 없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