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화학기업인 OCI그룹이 자본력을 앞세워 상속세 어려움에 처한 전통제약사 부광약품(003000)과 한미약품(128940)의 구원투수로 잇따라 나서면서 두 제약사의 향후 사업구조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OCI홀딩스는 지난 2022년 2월 상속세 납부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부광약품의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10.9%(774만7934주)를 1461억원에 사들였다. 그로부터 약 2년 만에 이번에는 한미약품그룹과의 통합에 나섰다. OCI는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 지분 약 27.03%를 7703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1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OCI홀딩스는 2025년 5월까지 부광약품 지분 19.1%를 매입하거나 부광약품에 매각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의무 지분율 요건인 상장회사 기준으로 30%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를 통한 편법적 지배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한 법적 장치다.
OCI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광약품 지분 추가 매입 또는 매각 계획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검토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OCI그룹 안팎에서는 OCI홀딩스가 부광약품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은 작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한미약품과의 통합도 사업 부진을 겪고 있는 부광약품에 대한 사업구조 재편을 염두에 둔 결정이란 해석이 나온다.
OCI가 한미약품그룹 통합에 이어 부광약품의 지분 19.1%를 추가로 사들이면서, 한미약품과 부광약품 각 사업의 시너지를 노리며 제약바이오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OCI가 부광약품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통합으로 한미약품그룹은 상속세 이슈를 해결하고, OCI는 고전하고 있는 부광약품의 구조조정과 함께 제약 분야 사업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OCI와 한미그룹 통합이 성사되면, 전통제약사인 부광약품과 한미약품이 OCI와 함께 ‘한 식구’가 되는 격이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부광약품의 최대 주주로 올라선 OCI가 부광약품과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
부광약품은 OCI에 인수된 2022년 창사 이래 첫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이우현 OCI 회장과 공동 경영을 맡은 유희원 당시 부광약품 대표가 지난해 사임했다. 이후 OCI그룹은 2023년 5월 1일을 분할기일로 자회사 관리와 신규 사업 투자를 전담하는 존속법인인 OCI 홀딩스와 신설법인 화학회사 OCI로 분할했고, 뒤이어 OCI홀딩스는 현물출자와 유상증자를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는 지난 12일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그룹의 지주사) 지분 약 27%(7703억원)를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이와 동시에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 지분 약 10.4%를 취득한다. 인수가 완료되면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에 오르고, 임 사장 측은 OCI홀딩스의 개인으로는 1대 주주(10.37%)가 된다. 이에 따라 양쪽 그룹은 조만간 통합지주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한미약품 오너일가는 지난 2020년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 5400억원대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배우자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겸 코리그룹 회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그 대상이다. 송 회장은 이번에 OCI에 지분을 팔아넘긴 돈 대부분을 상속세를 내는 데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OCI는 2022년 2월 부광약품 주식 773만334주를 총 1461억원에 취득하며 지분 10.9%를 확보해 부광약품 오너 일가가 보유 중인 주식 1535만2104주 중 절반을 받아 최대 주주가 됐다. 당시 OCI 측은 “60년 넘게 축적해 온 글로벌 케미컬 역량과 법인운영 노하우, 자금력을 바탕으로 부광약품의 제약바이오 분야 전문성과 결합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당시 부광약품 창업주 김동연 회장 자녀들의 가족 중 장남 김상훈 전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이 보유 주식 전량 379만1098주를 매각 처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