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 우주비행사 토마스 페스케가 미국 제약사 머크의 단백질 결정 실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머크는 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더 균일하게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NASA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 상공 350~400㎞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항암제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 단백질 결정 키우기나 액체 가열 등 기본적인 연구 개발을 우주에서 진행하고, 지구에서 제작을 마무리 해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약물의 ‘씨앗’을 만들어 지구에서 심어 ‘열매’를 얻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주에서의 신약 개발 과정이 미국 바이든 정부의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Cancer Moonshot)’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 머크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도 우주에서 개발해

미국 머크(MSD)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머크(MSD)

빌 넬슨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ISS에는 풀타임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실험실과 전담직원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NASA는1986년 우주왕복선에서 초기 암 실험을 수행한 적이 있다. 이때 넬슨 국장도 우주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참여했었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 ISS에는 미국 생명공학기업 마이크로퀸과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머크(MSD) 등 제약사에서 참여한 연구진이 모여 있다. 특히 머크는 림프구의 PD-1을 표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ISS에서 연구해 성과를 냈다.

머크 연구진은 ISS의 미세중력 환경에서 키트루다의 주요 단백질을 합성하면 지구에서보다 훨씬 균일하고 점도가 낮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미세중력’에 발표했다. 아직 인체실험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키트루다 개발에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단백질 결정을 안정적으로 만들면 치료제를 정맥 주사대신 피하 주사로 투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약물을 냉동보관하지 않아도 돼 생산, 이동, 보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ISS에서 키트루다 연구를 주도한 폴 레이커트 머크 연구원은 “신약개발을 할 때 미세중력을 활용하는 이점이 여럿”이라며 예를 들었다. 먼저 단백질 결정이 미세중력에서 떠 있는 상태에서는 지구에서보다 더 완벽하게 분자가 형성된다. 단백질의 결정이 성장하는 속도를 늦추면 분자가 형성할 때 생기는 결함을 줄이고 더 크고 균일하게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에는 대류 전류가 제한돼 있어 액체도 균일하게 가열된다. 레이커트 연구원은 “예를 들어 초콜릿을 45도에서 결정화시키면 매우 아름다운 초콜릿 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로버츠 ISS 국립연구소 최고과학책임자는 “머크가 키트루다의 안전성과 효능을 향상시킨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넬슨 국장은 “중력과 미세중력, 두 가지 다른 환경에서 동일한 단백질 결정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다”며 “지금도 수많은 연구진들이 우주에서 단백질 의약품을 만드는 실험을 ISS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다른 분야의 의학 연구자들도 고분자와 소분자 약물이나 백신을 개발하는 데 미세중력을 이용하고 있다. 레이커트 연구원은 “특히 백신에 사용하는 입자의 안전성과 균일성을 위해서 (미세중력 환경에서의 연구가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 환경에서는 세포가 빨리 노화한다는 점을 이용한 연구도 있다. 메건 에버렛 ISS 프로그램 연구원은 암 전단계 세포가 어떻게 암이 되는지 연구하고 있다. 그는 “암 전단계 세포가 실제로 암이 되기 전에 암을 식별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 ‘우주 제약사’ 원활 하려면 자금 늘리고 상업용 우주정거장 지어야

키트루다의 주요 단백질 결정을 지구에서 성장시켰을 때(왼쪽)와 ISS에서 성장시켰을 때(오른쪽)를 비교한 사진. 미세중력인 ISS에서 성장시켰을 때 훨씬 균일한 결정이 만들어진다./머크

우주에서의 신약개발이 이뤄지려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하나는 공공-민간 기관이 함께 ISS에서 연구 협력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여전히 NASA의 예산을 늘리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4년 ISS에서 공공-민간 협력 기회를 위해 예산을 늘리도록 제안했지만 상원과 하원 모두 예산을 줄이기를 원한다. 결국 ISS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내달 2일 마감하는 2023년도 자금으로 운영 중이다.

또 하나 문제는 ISS가 노후화해 2030년쯤 퇴역할 계획이라는 사실이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신약 개발을 위한 상업용 우주정거장이 필요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넬슨 국장은 “(ISS에서 새로운 상업용 우주정거장으로) 원활히 전환히 되지 않는다면 연구에 격차가 생길 수 있다”며 “NASA가 상업용 우주정거장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회사와 4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로버츠 최고과학책임자는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가 연구 자금을 지원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결국 상업에 의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커트 연구원은 “지금은 미세중력 연구의 초기단계”라며 “앞으로 엄청난 기회가 많이 주어질 것이므로 미래 우주 연구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