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암 정복을 위한 제약업계의 도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관문억제제’가 시장에 나온 이후 적응증 범위가 확대되며 주요 암의 표준치료 요법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면역관문억제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 치료법에 관한 연구 개발과 면역관문억제제와의 시너지를 높일 병용 투여 기술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특히 항암제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혁신 모달리티(Modality)를 적용한 개발 시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모달리티는 의약품이 표적을 타깃하는 방법, 약물이 약효를 나타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항체 약물 접합체, 이중항체, 세포‧유전자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신지훈 이베스트투장증권 연구위원은 “대형 제약사들이 병용요법으로 면역관문억제제 생태계에 편입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최근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인수, 이중항체 신약 개발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항체 약물 접합체(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이고 암세포에 보내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항체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면역 단백질이다. ADC는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에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를 터뜨리는 것과 같다. 그만큼 다른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아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글로벌 제약 바이오 회사들이 차세대 유망 기술로 꼽히는 ‘ADC’ 시장 선점을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올해에만 미국의 화이자와 머크(MSD), 애브비,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 같은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리 돈으로 조 단위 ‘빅딜’을 단행했다. 모두 ADC 기반 항암제를 파이프라인으로 확보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는 차세대 ADC를 개발하는 미국 바이오 기업 ‘이뮤노젠’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101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조1400억원 규모다. 애브비는 이번 이뮤노젠 인수로 이뮤노젠의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됐다. 이뮤노젠의 난소암 치료제 ‘엘라히어’는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난소암 분야에서 최초로 ADC로 조건부 허가받은 약이다. 난소암은 미국 부인암 사망 주 원인이다.
BMS도 바이오기업 시스트이뮨이 개발 중인 ADC 후보 물질의 글로벌 판권을 사들였다. 계약 규모는 선급금 8억달러(약 1조원)와 단기 조건부 지급액 5억달러(약 6565억원)를 포함해 최대 84억달러(약 11조원)였다. 미국 머크(MSD)는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최대 30조원 규모의 ADC 3종에 대한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 계약을 맺었다.
이중항체 신약 개발 경쟁 열기도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중항체는 두 개의 다른 타깃(항원)을 동시에 인식하는 항체로, 한 번에 하나의 타깃(항원)에만 결합할 수 있는 단일 항체보다 치료 효과가 높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예를 들어 이중항체 항암제의 한 쪽은 암세포를 타깃으로 하고, 다른 한쪽은 면역세포와 반응하는 방식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즉,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지훈 이베스트투장증권 연구위원은 “내년에는 ADC,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이중항체 등 차세대 모달리티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거나 제형기술과 같이 빅파마의 파이프라인의 약점에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헬스케어 데이터 통계서비스 기업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항암 시장 전망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복합 연간 성장률(CAGR) 13~16%로, 글로벌 의약품 시장 성장률 전망 3~6%인 것과 비교해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