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일러스트 / 조선DB

일본 의료기기 대기업 올림푸스와 국내 소화기 스텐트 제조업체인 태웅메디칼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인수합병(M&A) 최종 협상이 한창이다. 올림푸스는 올해 2월 태웅메디칼을 3억 7000만달러(약 488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태웅메디칼은 소화기 스텐트에서 일본 시장 1위 기업으로, 올림푸스는 태웅메디칼 신경민 대표 등 최대주주 지분 87.83% 포함 지분 전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올림푸스와 태웅메디칼을 포함해 올해 국내 의료기기 업계에서 초대형 인수·합병(M&A)이 잇따랐다. 국내외 사모펀드들이 포문을 연 가운데, 글로벌 대기업들까지 인수 대열에 조금씩 합류했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적극적인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쯤, 우수한 기술력과 뚜렷한 성장성을 보유한 국내 의료기기 기업에 대한 관심이 글로벌 M&A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1일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국내 의료기기 업체 M&A는 8건이었고, 이 가운데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넘는 빅딜도 2건이나 됐다. 기업 간 전략적 제휴도 여러 건 체결됐다. 글로벌 의료기기 M&A는 2021년까지 꾸준히 성장하다가 지난해 고금리 영향으로 급감하더니 올해 내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평균 거래 금액도 6년 평균을 밑돌았다. 그런데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손바뀜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외 사모펀드(PE)들이 올해 의료기기 업체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M&A에 나섰다. 올해 1월 루하프라이빗에쿼티(루하PE)가 체외진단업체인 랩지노믹스를 1800억원에 인수했고, 이후 MBK파트너스-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 컨소시엄이 국내 1위 임플란트 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를 약 2조 9000억원에 인수했다. 올해 6월에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가 국내 미용 레이저 업체인 루트로닉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사모펀드들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기업 가치를 높여서 다시 매각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어서다. 이들 사모펀드들은 적극적인 ‘경영권 참여’를 통해 기업 가치 재고에 나섰다. 루하PE는 최대주주 주식을 900억에 사들인 후 940억 원을 회사에 추가 투자해 올해 8월 미국 표준인증연구실(클리아랩)인 QDX를 인수했다. 업계는 랩지노믹스가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MBK-UCK 연합은 올해 2월 오스템임플란트 최규옥 회장의 지분 10.3%를 인수한 후, 공개매수 등을 통해 90.1%의 지분을 확보해 올해 8월 회사를 자진 상폐했다. 한앤컴퍼니도 루트로닉 황해령 대표 보유 지분을 인수한 뒤 시장에서 나머지 지분을 확보해, 올해 10월 자진 상폐했다. 이들 두 회사는 KCGI(강성부 펀드) 등 행동주의 펀드 개입으로 경영이 힘든 상황이었는데, 상폐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였단 뜻이다.

사모펀드가 인수 이후 기업가치를 높인 사례는 지금도 확인된다. 올해 최종 계약이 불발되긴 했지만, 사모펀드인 시너지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비혈관 스텐트 기업인 엠아이텍을 글로벌 의료기기 대기업인 보스턴사이언티픽에 2912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시너지이노베이션이 지난 2016년 엠아이텍을 300억 원에 인수한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9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는 계산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의료기기 산업의 입지가 높아지기도 했다. 올림푸스가 태웅메디칼을 50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도 혈관 비혈관 스텐트는 국내 업체들이 석권하고 있다. 미국 특허 문제로 최종 불발되기도 했지만, 글로벌 대기업인 메드트로닉은 올해 5월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 기업 이오플로우 1조 3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해 눈길을 끌었다.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CFA)은 “대형 사모펀드에 인수된 기업 사례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기업을 더 높은 가치에 재매각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M&A를 통해 현금을 획득한 기존 창업자나 주주들을 다시 의료기기 산업에 재투자할 수 있게 유도한다면 또 다른 의료기기 산업육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헬스케어 업계에 기업공개(IPO)가 어려워지면서, M&A 대상이 될 만한 좋은 기업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시장에 투자자금이 풍부하면, 좋은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연예인 미용렌즈 ‘클라렌’으로 잘 알려진 콘택트렌즈 전문 제조업체인 인터로조(119610)도 M&A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주주인 노시철 회장 지분(25.08%)을 포함해 오너가 지분 35.18%에 대한 매각을 추진 중이다.

내년부터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작년과 올해 거래가 급감했지만, 이에 따라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가용 자금은 지난해 1조 4270달러로 2020년 대비 38% 급증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M&A에 호재가 될 수 있다. IRA 법은 고령자들이 주로 구매하는 핵심 의약품 10개에 대해 연방정부가 직접 제약 회사와 협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약값이나 의료기기 값을 인하해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글로벌 헬스케어 업체들은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반대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국내 업체들의 몸값이 높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