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 톡신 안전사용 전문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제영 압구정 오라클 피부과 원장이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실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 안전사용 전문위원회 제공

국내에서 미용과 두통 치료 목적으로 보툴리눔 톡신을 맞은 환자 10명 중 7명은 별다른 효과가 없는 내성 의심 환자라는 의사들의 소견이 나왔다. 환자들은 10명 중 4명이 내성이 생겼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주름 개선을 위해 보툴리눔 톡신 시술을 지나치게 자주 받을 경우 다른 질환을 치료할 때 내성이 생길 것으로 보고 해당 의약품에 대한 규제를 지금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툴리눔 톡신 안전사용 전문위원회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안전한 보툴리눔톡신 사용 문화 조성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툴리눔 톡신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균이라는 세균이 생산하는 신경독소로 약한 근육 마비를 일으켜 주름을 펴고 눈 떨림을 없애는 효과를 낸다. 미국 앨러간이 개발한 ‘보톡스’라는 상표의 주름 개선 목적 제제로 유명해졌다. 이 밖에 편두통, 다한증 등의 치료 목적으로도 쓰인다.

박제영 압구정오라클피부과의원 대표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발표를 맡아 보툴리눔톡신 시술 경험이 있는 국내 20~59세 성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연 2회 이상 보툴리눔톡신을 맞고 있었고, 51%는 한 번에 두개 부위 이상을 시술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툴리눔 톡신 시술을 맞을 수록 효과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74%에 이른다. 과거와 비교해 보툴리눔 톡신의 효과 지속 기간이 짧아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답한 것인데, 이 경우 의약품 내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게 박 원장의 설명이다. ‘보툴리눔 톡신 내성을 의심한 적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도 36%로 나타났다.

이렇게 시술 효과가 감소했다고 느끼면 병원을 옮긴다고 응답한 비율이 44%로 집계됐다. 자신이 어떤 톡신 제품을 맞는 지 기본 정보도 모른 채 맞았다는 응답자 비율은 84%나 됐고, 전문가로부터 내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들었다는 응답은 전체의 26%에 그쳤다. 응답자 75%가 제품별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제품별 실제 차이를 알고 있는 환자는 15%에 그쳤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 보툴리눔 톡신 시술비가 저렴해 시술이 쉽게 대중화가 됐다. 하지만 정작 제품별 특성이나 내성에 대한 정보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환자들이 병원을 바꾸면서 시술을 받으면서,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톡신 내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시술을 반복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보툴리눔 신경 독소 자체는 원래는 내성을 유발하지 않는다. 문제는 박테리아로부터 독소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신경 독소만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균주가 신경 독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독성을 보호하기 위해 복합 단백질로 감싸는데, 면역계가 이 복합 단백질을 외부 물질로 인식해 중화항체를 만들어내면서 내성이 나타난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국내에는 이런 복합 단백질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한 제품이 많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적정용량과 주기를 지키지 않는 경우 복합 단백질에 대한 내성의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며 “내성이 생긴다면 미용 목적 외에 다양한 질환의 치료에 직접적, 장기적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보툴리눔 톡신의 적정용량과 시술 주기를 지키지 않을 경우 내성의 위험성이 더욱 높아질 것을 우려했다.

김인규 연세대 K-NIBRT(한국형 국립바이오공정교육연구)사업단 교수는 “미국에서는 용도와 관계없이 보툴리눔톡신 취급자와 취급기관에 대한 사전규제가 마련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사전규제 없이 신고제로 운영돼 관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어렵다”며 “보툴리눔톡신 취급자 및 취급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자격을 설정하는 등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옥륜 위원장은 “보툴리눔톡신 면역원성 발생이라는 잠재적 위험성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며 “의료진과 환자가 높은 품질의 제품을 선택해 내성으로부터 안전성을 높이고 부위별 적절한 용량과 주기에 맞춰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지난 10월 한국위해관리협의회 산하 소위원회로 출범했다. 문옥륜 서울대 명예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