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SKCC) 세포진료서비스부문장은 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현재 진행 중인 CAR-T 치료제 임상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조선비즈

“한국이 세포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게놈 시퀀싱(유전체 분석)과 엔지니어링 기반이 워낙 탄탄해서 발전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의사과학자인 박재홍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SKCC) 세포진료서비스부문장은 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세포치료제 분야 연구가 비용 부담이나 높은 시장 진입 장벽 같은 초기 리스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학계와 제약계가 주목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문장은 종양학 전문가이자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임상 개발 전문가다. 16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박 부문장은 존스홉킨스대 의대와 의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레지던트(전공의)를 거쳐 2019년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본격적인 임상의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모든 치료와 CAR-T 치료제 임상 1·2상의 책임 연구를 맡고 있다. 그는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전문매체 조선비즈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공동 주최로 이날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HIF)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CAR-T는 면역세포인 T세포가 특정 암 세포만 찾아 공격하는 면역항암제다. 환자의 혈액에서 추출한 T세포에 암 세포만 추적하는 DNA를 주입해 증식시킨 뒤 다시 환자의 몸 속에 넣어 치료하는 방식이다.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의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 ‘킴리아’가 대표적인 CAR-T 치료제로 꼽히고 있다.

박 부문장이 일하는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는 1984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 암센터이자, MD앤더슨 암센터에 이은 세계 2위의 암병원이다. 암 진단·치료·예방에 필요한 기초 연구와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박 부문장이 이끄는 세포진료서비스부문은 세포치료제 연구개발(R&D)은 물론 신약개발 임상시험을 위해 2년 전 신설됐다.

박 부문장은 “CAR-T 치료제 중 킴리아가 2017년 세계 최초로 정식 승인받으면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는 암 환자들의 세포치료법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새로 과를 만들었다”며 “환자 진료부터 세포치료가 적합한 환자 선별, 세포 투여 후 추적 관찰, 반응에 따라 후속 치료 진행 등 이 모든 과정을 우리 과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박 부문장은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서 승인받은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의 B세포 림프종 세포치료제인 ‘예스카타’의 임상시험을 비롯한 여러 CAR-T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이끌고 있다. 예스카타는 지난해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했다. 이밖에도 미국 알로진 테라퓨틱스의 CAR-T 치료제, 아이오반스 바이오테라퓨틱스의 종양침윤림프구(TIL) 기반 면역치료제 임상을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 세포치료제는 CAR-T와 자연살해(NK)세포를 중심으로 파이프라인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FDA의 정식 승인을 받은 세포치료제는 CAR-T가 유일하다. 킴리아와 예스카타를 포함해 약 6개 치료제가 상용화됐다. 박 부문장은 “CAR-T는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유일한 세포치료제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패러다임”이라면서도 “현재 50% 수준의 완치율을 80% 이상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고 다양한 종류의 세포치료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큐로셀(372320)앱클론(174900)이 임상시험에 진입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두 기업 모두 혈액암 CAR-T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1상과 2상에서 치료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다. CAR-T는 3상 비교임상이 불가능해, 2상 이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박 부문장은 큐로셀의 CAR-T 치료제와 GC셀의 NK세포치료제의 임상 자문도 맡고 있다. 그는 “큐로셀은 기존 상용화된 CAR-T 치료제들과 다르고, 암 치료를 방해하는 면역관문수용체 제거 기술인 ‘OVIS’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올해 스페인에서 개최된 ‘유럽종양학회(ESMO) 2023′를 비롯해 전 세계 학회의 큰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부문장은 임상 연구 외에도 세포치료의 완치율을 높이기 위한 환자 선별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세포치료가 가장 필요하고 적당한 환자에게 맞는 임상 디자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물질이어도 이걸 잘못 디자인해서 엄한 환자에게 쓰면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며 “50%의 완치율을 80%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환자가 세포치료에 가장 좋은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선별하는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 부문장은 환자 완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환자 데이터와 AI를 접목시키면 환자마다 다른 CAR-T 디자인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현재 전문가들과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