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주사제인 '오젬픽'을 대표적 성인병인 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했다. 그런데 사용자들에서 탁월한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자 성분 용량을 더 늘린 '위고비'를 2021년 비만 치료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DB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가 획기적인 비만 치료 신약으로 급부상하면서 수급난에 빠졌다.

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비만 치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릴리는 비만 치료 시장의 성장과 함께 나란히 올해 3분기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지만 정작 당뇨 환자들은 약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GLP-1 계열 약물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다. 하지만 임상 연구에서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되면서 최근 '비만치료제'로 더 각광받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와 '위고비',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등이 GLP-1 비만 치료 신약 대표 주자로 수요를 이끌고 있다.

문제는 급증한 수요를 공급이 못 받쳐주면서,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당뇨병 치료 시장에서 GLP-1 의약품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일라이릴리의 GLP-1계열의 당뇨병 치료제 '트루리시티(둘라글루타이드)'만 해도 국내 공급난이 5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트루리시티의 국내 영업 마케팅과 판매를 맡고 있는 보령(003850) 관계자는 국내 트루리시티 수급난에 대해 "상황이 변한 게 없다"면서 "충분한 물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국내에 허가된 트루리시티는 매일 복용해야 하는 당뇨병 약과 달리, 주 1회 주사 치료하면 된다는 간편성에 힘입어 매출은 성장세를 그려왔다. 연 700억원대 규모의 국내 GLP-1 당뇨 치료제 시장의 약 70%를 이 약이 점유했다. 하지만 올해 6월 일라이릴리 측이 '트루리시티' 공급 부족을 알리는 공문을 전달하면서 의료현장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일찍이 물량을 확보한 대형병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선 다른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로 대체 처방 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일라이릴리로부터 제품을 받아 판매를 하는 보령 입장에선 공급 복구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노보노디스크의 GLP-1 당뇨 복합주사제 '줄토피 플렉스터치주'도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난 8월부터 공급이 불안하면서 9월 공급 재개를 예고했으나 다시 11월로 공급 재개 시점이 미뤄진 상황이다. 노보노디스크 측은 "줄토피 플렉스터치주 제품 공급 정상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면서 "전 세계적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제품의 공급 불안정으로 인해 환자 진료나 업무에 불편을 끼쳐 깊은 사과 말씀드린다"고 했다.

물론 현재 미국에서도 비만 치료 목적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급난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저용량에 대한 공급 제한 품목'으로 묶어둔 상황이다. GLP-1 계열 약물은 저용량부터 단계적으로 용량 상승을 해야 하는 약물인데, 수급난이 이어지다 보니 저용량 공급을 제한해서 신규 환자 유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비만약 공급을 위해 당뇨약 공급이 뒤로 밀리게 되면, 한국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장의 당뇨병 환자의 의약품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비만 치료제의 주성분 세마글루타이드와 리라글루타이드는 모두 유사 GLP-1 작용제다. 마운자로의 주성분 '티르제파타이드'는 위고비의 '세마글루타이드'처럼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호르몬을 흉내 낸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뇌가 배부르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조선일보DB

이번 3분기 실적에서도 폭발적인 수요가 확인됐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3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기간보다 733.9% 급증한 96억덴마크크로네(약 1조8000억원)에 달했다.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3분기 매출액은 14억달러(1조8312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52% 늘었다.

이에 두 회사 모두 공급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당뇨·비만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공급난 해결이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는 다수의 위탁생산(CMO) 계약을 통해 공급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라이릴리는 공급 확대를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1~3분기 누적 설비 투자 규모는 약 24억달러(약 3조1449억원)로, 2022년 연간 설비 투자액 총 19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일라이릴리 측은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제품 생산 능력(CAPA)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으로 증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곳곳의 GLP-1 계열 주요 제품이 정상적으로 공급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에서 비만 치료제에 대한 강한 수요가 수그러들지 않은 데다 추가 적응증에 따른 수요도 더해질 수 있어서다.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는 미국과 유럽연합, 캐나다 등에서 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받았고, 현재 미 식품의약국(FDA)에 비만 치료제로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한편, 노보노디스크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9% 증가한 587억덴마크크로네(약 11조400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3.3% 늘어난 269억크로네(약 5조6000억원)로 집계됐다. 이 회사 GLP-1 계열 약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한 5조8000억원 규모다. 일라이릴리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한 95억달러(12조4374억원),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73% 줄어 4억5000만달러(약 5893억원)로 집계됐다. 이 회사는 인수합병 등의 영향으로 비용이 늘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줄었다.

☞GLP-1 수용체 작용제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유도해 글루카곤 분비를 줄여 혈당 수치를 낮추고 동시에 간에서 당 분비를 감소시키는 호르몬이다. 위에서 음식물 통과를 지연하도록 뇌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