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5일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흥구 객원기자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는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PET은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의약품을 이용해 인체에서 일어나는 생리·화학적 현상을 3차원으로 보는 핵의학 기술이다.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방출되는 양전자는 방출 후 아주 짧은 시간만 존재하고 소멸하는데, 이때 소멸 방사선을 방출한다. PET은 이때 나오는 방사선을 검출해 방사성 의약품이 얼마나 모여 있는지 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국산화다. 의료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PET와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합친 장비의 가격은 30억~40억원, PET와 자기공명영상(MRI)을 결합한 장비는 80억~100억원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독일 지멘스나 미국 GE, 네덜란드 필립스가 국내 의료영상기기 시장을 70% 이상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해외 의존성이 높다.

PET 장비 국산화에 도전장을 내민 건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16년 창업한 국내 기업이다. 공학도로 시작해 핵의학자가 된 이재성 대표가 이끄는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이 주인공이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장비 개발뿐 아니라 직접 제조까지 하면서 완전한 PET 장비 국산화를 꾀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PET 장비 국산화의 여정을 들었다.

이 대표는 교수 시절 PET 중에서도 디지털 PET 기술을 주로 연구했다. 2009년에는 실리콘광증폭기(SiPM) 기반 디지털 PET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PET와 MRI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영상장비도 만들었다. 이때 나온 연구 성과들은 모두 국제학술지 ‘미국핵의학회 저널(Journal of Nuclear Medicine)’에 실렸다.

차세대 의료영상기술을 개발하자 전 세계에서 기술 이전 요청이 빗발쳤다. 하지만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의 지원을 받아 창업에 나섰다. 이후 MRI 장비를 개발하는 이스라엘 기업 애스펙트이미징(Aspect Imaging)과 전임상에 활용하는 소동물용 PET/MRI 장비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 납품하고 있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이 개발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장비 '파로스'./브라이토닉스이미징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이 개발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장비 '파로스'와 독일 지멘스사의 PET 장비의 뇌 스캔을 비교한 모습. 가운데가 파로스, 왼쪽이 지멘스 장비의 뇌 스캔 결과다./브라이토닉스이미징

이번에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이 개발한 건 다목적 고해상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장비 ‘파로스(Pharos)’다. 파로스는 넓은 자리를 차지하던 기존 장비와 달리 양전자 방출을 측정하는 검출기 부분이 작아 기기 크기를 대폭 줄였다. 기존 PET 장비가 한 대 들어갈 자리엔 3대의 파로스가 들어갈 수 있다. 검출기는 작지만, 감마선 민감도가 높아 기존 제품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가격도 확 낮아져 기존 장비 가격의 최대 10분의 1 수준인 10억~15억 사이다.

작다고 활용도는 높다. 검출기와 의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머리와 가슴, 팔다리를 모두 촬영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와 협력해 실제 사용자들에게 장비를 적용해보면서 편안한 자세를 연구했다. 환자들이 의료영상기기를 이용해 검사를 받을 때 전신이 장비 속으로 들어가 나타날 수 있는 폐소 공포증도 막는다.

PET는 암 진단에도 사용되지만, 뇌 분야에선 주로 치매와 파킨슨병을 진단하는 데 사용된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 치매 환자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에선 치매 환자가 늘어나 PET 검사 건수가 2013년 1만7000건에서 2021년 3만5000건으로 8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PET 시장 규모는 2028년 12억6000만 달러(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정서희

점점 성장하는 시장에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이 내세운 경쟁력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PET 장비에 적합한 AI 알고리즘을 직접 개발해 장비와 연동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신체 기관을 촬영하고 단 20초 만에 뇌 기능을 정량화한 분석 결과를 의료진에게 제공한다.

AI 소프트웨어는 인지 능력을 개략적으로 확인하는 설문 검사에서 벗어나 뇌 기능을 정확히 측정한다. 뇌 부위 별로 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수치로 나타낸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이 개발한 AI 소프트웨어는 현재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고대구로병원, 한양대병원 등 15개 의료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 “국가 지원으로 도전한 국산화…사명감 가지고 수출할 것”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5일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흥구 객원기자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는 지난 5일 조선비즈를 만나 “연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파로스에 대한 인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의 지원을 받아 PET 장비를 국산화하기까지 흐른 세월은 7년이다. 내년 초 식약처 의료기기 인허가를 목표로 하고,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에 돌입한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직접 파로스를 생산한다. 위탁생산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애초에 해외 기업들의 기술 이전 요청을 뿌리치고 창업을 결정한 만큼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을 ‘성공한 토종기업’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검출기에 들어가는 센서를 빼고는 모두 직접 생산한다”며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우리 직원들의 손을 거친다”고 말했다. 이어 “큰 회사로 성장을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접 만들지 않으면 단가가 맞지 않아 경쟁력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새로 개발한 파로스를 앞세워 미국과 유럽 의료기기 시장을 공략한다. 이 대표는 “의료기기 시장의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를 받아 국내외 판매를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미 미국과 유럽의 유수한 기관과 거래를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5일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흥구 객원기자

국산 PET 장비 개발을 완수하는 데에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개발을 넘어 상용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5000억 달러(660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앞서기 위해선 장기적인 투자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지원 없이 해외 의존도가 높은 장비를 국산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큰 도전”이라며 “의료기기 개발은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데, 6년 동안 진행된 범부처의료기기사업은 기업들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