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단장. 고려대 기계공학,텍사스 A&M 대학 바이오엔지니어링 석·박사, 현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
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단장. 고려대 기계공학,텍사스 A&M 대학 바이오엔지니어링 석·박사, 현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은 세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국산 의료기기가 사장되는 현실을 바꾸고자 각 부처가 의기투합해 만든 사업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부터 오는 2025년까지 1조 1971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연구개발(R&D)부터 임상, 인허가, 제품화까지 전주기로 지원한다.

한 분야의 산업을 육성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기술 개발의 밑거름이 되는 기초과학 연구개발(R&D) 자금 지원과, 기초과학을 기술로 산업화하는 연구 지원, 마지막이 산업화에서 상업화에 이르는 규제 개혁이다. 범부처사업단에서 의료기기와 관련한 기초과학 육성은 과기부가, 중개연구는 산자부에서, 복지부와 식약처는 규제 혁파를 담당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규제가 강한 산업으로 통한다. 시장 진출을 위한 당국의 허가를 받으려면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임상 근거(백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은 제품은 쓸 수가 없다는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은 “의료기기는 가전제품과 달리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도, 이를 사람들이 쓰게 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단장의 말처럼 국산 의료기기가 개발에 성공해 시장에 출시되는 비율은 15%, 성공하는 비율은 1%가 채 안된다. 사업단은 요즘 복지부 식약처와 손잡고 의료기기 산업 규제의 틀을 만들고 효율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김 단장은 “(재단에서는) 의료기기 규제의 틀을 좀 더 확장하고 효율화하는 쪽으로 고민 중이다”라며 “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계와 정부에서 큰 틀에서 바꿔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장은 정부의 R&D 지원 사업의 역할이 ‘마중물’이라면 규제 개혁은 ‘추진 엔진’이라고 봤다.

의료기기 산업은 복잡한 각국의 규제를 뚫고 시장에 안착하면 ‘승자독식’이 작동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사용해서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데이터를 쌓을수록 더 많이 쓰이고, 또 더 널리 쓰인다.

김 단장은 “한국 기업들은 제조에 있어서는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라면서도 “문제는 속도”라고 말했다. 전 세계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치열한 시장에서 한국의 의료기기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나가려면, 리얼월드 데이터(실제 현장에서 사용되면서 쌓이는 임상 근거)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신속히 구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단장은 “이스라엘의 경우 정부의 전향적인 규제 혁신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했고, 이 가운데 큰 기업도 많이 나왔다”라며 “우리가 지혜를 모아서 우리 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만 열어준다면 이스라엘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