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가 21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송복규 기자

한국 사회가 고령화하면서 이른바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지난해 기대수명은 83.5세이다. 기대수명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70년에 기대수명이 61.9세인데 반세기 만에 무려 21.6년이 늘어났다.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영양 상태가 개선된 결과다. 2030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남성은 84.1세, 여성은 90.8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기대수명도 늘어나자 새로운 난제가 등장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환자가 급격히 증가한 치매가 장본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한국에서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지난해 기준 93만5086명이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꼴로 치매를 겪고 있는 셈이다. 한국 치매 환자는 올해 100만명을 넘어 2060년엔 346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치매를 해결하기 위한 뚜렷한 치료제는 아직 없다. 미국에서 정맥 주사제 방식의 치매치료제가 허가받긴 했지만, 임상 유효성과 안전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약물을 사용했을 때 일시적 뇌부종(ARIA-E)이나 뇌출혈(ARIA-H)이 발생해 투약 환자 중 사망자까지 나왔다. 치료제 가격도 비싸 치료제를 투약하는 데 1년에 4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는 치매 없는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과학자 출신 기업가다. 1959년생인 정 대표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글래스고대에서 생리생화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 이후 한·영 생명과학연구협력센터 총괄 소장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등 줄곧 영국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왔다.

정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온 건 2010년이나 돼서다. 영국에선 2000년 연구개발 컨설팅과 기술이전을 자문하는 회사를 창업했는데, 직접 신약 개발에 나서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현재는 한국에서 자신이 창업한 아리바이오 대표와 연세대 의대 내과학교실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정 대표는 “영국에서 30년 동안 활동하면서 바이오기업들이 조금만 더 투자하고, 임상하고, 연구하면 가치가 높은 약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계속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며 “다국적 제약사들도 계속 개발에 실패하고 있는 치매를 해결하는 신약을 만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리바이오는 먹는 치매약을 개발하기 위해 후보물질 ‘AR1001′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AR1001은 다중기전을 특징으로 하는 합성의약품이다. AR1001은 세포 속으로 침투해 뇌혈관 벽에 쌓이는 효소인 포스포다이에스터레이스5(PDE5)를 억제한다. 또 신경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를 활성화해 신경세포 사멸을 막고, 신호전달물질인 윈트(Wnt) 체계를 활성화한다. 자가포식 활성화로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고 뇌 혈류량 증가로 뇌 조직 파괴를 막기도 한다.

아리바이오가 개발 중인 치매치료제 'AR1001'의 임상 2상 결과. 10㎎ 위약군과 30㎎ 위약군에서 타우(Tau) 단백질 수치가 감소했다./아리바이오

다중기전을 선택한 이유는 치매가 여전히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의약품은 특정 원인은 해결하기 위해 한 기전으로 표적 치료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치매는 원인도 워낙 다양하고 명확하지 않은 만큼 신약 개발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분자 표적이 정확해야 약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 다중기전을 의심해왔지만, 안전성만 보장된다면 치매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에서는 안전성과 내약성, 인지기능 개선 효능을 확인했다. 특히 AR1001 30㎎을 52주 동안 투약한 환자들은 알츠하이머 치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타우(Tau) 단백질 수치가 25% 이상 줄었다. 임상 결과는 뇌 신경질환 분야 국제학술대회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콘퍼런스(AD&PD)’와 ‘알츠하이머협회 국제콘퍼런스(AAIC)’에서 올해 발표됐다.

정 대표는 “임상 데이터가 좋다 보니 다국적 제약사들이 많은 제안을 주고 있다”며 “최근에는 중동 국가들과도 AR1001 허가 협상을 하고 왔는데, 잦은 해외 출장으로 바빠 다가오는 명절도 잊어버릴 정도”라고 말했다. 조선비즈는 이달 21일 경기 성남시 분당 아리바이오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만나 치매 해결의 가능성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리바이오 관계자가 올해 4월 스웨덴에서 열린 '2023 AD&PD'에서 AR1001의 바이오마커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아리바이오

–AR1001을 개발하면서 다중기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선 어떤 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질문이 첫 번째로 나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분자 표적을 정확히 하고 한 가지 기전을 선택한다. 하지만 치매는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기 때문에 다중기전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부작용만 잡아주면 장기간 먹을 수 있는 효과적인 약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부작용은 없는 건가.

“임상 데이터에선 부작용이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임상을 가짜 약을 먹는 환자와 진짜 약을 먹는 환자로 나눠 진행했는데, 1년 동안 두통이 5% 정도 발생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현재 치매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언급되고 있는 아리아(ARIA)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미 독성 실험까지 마쳐 발암성도 없다. 이런 실험은 보통 임상 3상에서 하지만, 환자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미리 준비했다.”

–지난해 12월부터 글로벌 임상 3상에 돌입했다. 현황과 계획을 설명해달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작년 11월에 임상 계획(IND)을 승인받고, 다음 달인 12월 첫 환자에게 투약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600명, 유럽 300~400명, 중국 100명, 한국 150명으로 총 1200명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는 미국과 한국만 임상 계획 승인이 난 상태지만, 올해 연말 중국과 유럽에서도 모두 승인될 것으로 보고 있다. AR1001에 대한 FDA 허가는 2026년 말쯤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일본은 왜 빠졌나.

“일본에 대한 전략은 제약사마다 다르다. 특히 일본에서의 임상은 외국 회사가 관리하기엔 만만치 않다. 대신 미국과 더불어 시장 규모가 큰 중국을 선택했다. 시장 자체가 큰 국가를 목표로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시장은 우리가 직접 하기보다는 나중에 파트너로 합류할 다국적 제약사가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는 21일 "매출보다는 환자를 생각하면서 신약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아리바이오

–AR1001 1회 복용 비용은 얼마인가.

“AR1001 1회 복용에 드는 비용은 20달러(2만6000원) 정도로 예상한다. 정맥주사형 치매치료제는 진료까지 포함하면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 AR1001은 매일 복용한다고 해도 비용적인 부담이 많이 완화된다.”

–국내에선 삼진제약, 중국에선 상하이제약과 협력하기로 했다. 유럽이나 다른 국가에선 협력을 논의하는 회사가 따로 있나.

“다국적 제약사 7곳과 협력을 논의 중이다. 유럽에서는 제약사 두 곳에서 판매공급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이 왔다. 사실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도 계약을 맺자는 곳이 있는데, 조금 지켜보고 있다.

삼진제약은 굉장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들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미팅을 할 정도다. 아리바이오는 생산시설이 없는데, 삼진제약이 글로벌 공급처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다만 완제품을 만드는 시설이 FDA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신약 개발에 뛰어들면서 왜 치매를 선택했나.

“항암제나 당뇨치료제는 시장은 크지만,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경험이나 인력, 자금력 측면에서 게임이 안 된다. 근데 치매는 세계적인 제약사들도 실패할 만큼 ‘기울어진 운동장’이 없었다. 치매치료제 개발에 나섰다가 포기하는 제약사들도 생기는 걸 보면서 오히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다국적도 실패했는데, 성공할 수 있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최근엔 아리바이오의 성과를 보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사훈이 ‘사람 중심’이다.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나.

“사실 모친도 3년 전 치매를 진단받았다. 치매는 환자는 물론, 가족들도 너무 고통스러운 질환이다. 매출보다는 환자를 생각하면서 신약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의 상황을 보고 무엇을 개선할지 따져볼 때 다국적 제약사보다 뛰어난 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 치매 환자 자녀 중 60%가 우울증을 겪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들과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참고자료

Alzheimer’s Research & Therapy, DOI: https://doi.org/10.1186/s13195-022-01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