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한국 바이오벤처가 성공하려면 미국 보스턴 벤처들과 경쟁해 이겨야 합니다. 연세대 고려대 상관없이 협력해야죠.”
지난 24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고려대의료원⋅연세대의료원 창업기업 공개설명회에서 만난 솔라스타벤처스 윤동민 대표는 ‘경쟁 관계인 고대와 연대 교수들이 합동 설명회를 하는 게 이색적이다’라는 말에 “국내에서 우리끼리 싸운다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이렇게 답했다. 솔라스타벤처스는 2013년 국내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탈(VC)이다.
◇ 고려⋅연세의료원 의사벤처 5곳씩 10곳 소개
이날 호텔에서는 고려대⋅연세대 의료원의 산학협력단과 기술지주회사가 학교 안에서 창업한 유망 벤처를 5개씩 10곳으로 추려 바이오 벤처캐피탈(VC)과 제약사 등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IR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연세대 의료원이 학내 바이오 벤처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좋은 반응을 끌어냈는데 올해는 고려대의료원이 합류해서 판을 벌였다.
설명회가 열리는 호텔 31층은 벤처 기업들이 기술을 소개하는 콘퍼런스장과,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 주는 IR 미팅룸으로 나눠서 진행했다. 호텔 입구는 설명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북적북적했다. 참석자 명단을 보니 사전 신청한 사람만 232명이었다. 고려대의료원 관계자는 “사전등록 없이 찾아온 사람도 40명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참석자 명단에서는 부광약품, 종근당, JW중외제약, 대웅제약 등 제약사들도 눈에 띄었다. 종근당의 벤처 창업 투자 법인 CKD창업투자와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자산운용, 모바일게임 ‘쿠키런’을 만든 데브시스터즈의 창업 투자 전문 자회사 ‘데브시스터즈벤처스’도 보였다. 특허법인과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도 이름을 올렸다.
윤동민 대표는 이날 미국 보스턴 바이오기업 생태계에 대한 특별 강연을 했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윤 대표는 2009년 미국 뱁슨 칼리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바이오 기업에 투자해 온 ‘미국통’이다. ‘연세대’ 출신이지만, 이번 설명회에는 고려대의료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윤 대표는 “세포⋅유전자 치료 분야에서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시장은 비만⋅대사 질환 치료제라고 설명했다. 삭센다⋅위고비⋅마운자로 등 펩타이드(GLP-1,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의 비만 치료 주사제가 위장 절제 수술 효과에 버금가는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곧 출시될 먹는 GLP-1 비만치료제를 주목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 “세포 유전자 치료제 신약 한국기업 가능성”
설명회에는 고대와 연대 창업 기업들이 번갈아 가며 회사 소개를 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송재준 이비인후과 교수가 퇴행성 뇌질환 전자약을 개발하는 뉴라이브, 대사조절 항암제를 연구해 온 정재호 연세암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창업한 난치성 항암제 신약 개발사인 베라버스,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창업한 암 정밀의료 플랫폼 개발사인 온코마스터 등이 단상에 올랐다.
윤동민 솔라스타벤처스 대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Fs)로 심혈관 질환을 치료하는 카리스바이오에 질문을 던졌다. 이 회사는 환자의 혈관에서 추출한 세포로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동맥 질환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줄기세포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연세대 의생명학과 윤영섭 교수(미국 에모리의대 석좌교수)가 창업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윤 교수는 미국 터프츠의대 심장내과를 거쳐 에모리의대 심장내과 줄기세포 연구소장을 지낸 저명한 의사과학자이기도 하다.
카리스바이오 윤영섭 대표는 유도만능줄기세포 치료제가 유전자 교정 치료만큼 근본적 치료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동물실험 결과를 보면 인간에게서는 효과가 30년 정도는 유지될 것”이라고 답했다. ‘근본’ 치료는 몰라도 반영구적 교정은 가능하다는 뜻이다.
설명회 건너편 미팅룸은 일정이 마무리된 오후 5시를 넘어서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데브시스터즈벤처스에서 바이오벤처 투자를 담당하는 이승우 상무는 “몇 년 전만 해도 교수 창업 기업의 설명회를 가면 학문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며 “그런데 이날 발표에서는 학문적 성과보다는 향후 사업화 가능성을 강조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를 준비한 김태훈 고려대의료원산학협력단 부단장은 “환자들과 직접 접점을 가지면서 과학적 깊이를 갖춘 ‘의사과학자’가 신약 개발에 적극 참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영섭 대표는 “한국의 의사 과학자들이 학교를 넘어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