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배우 유오성은 필로폰에 중독돼 삐쩍 마른 몰골로 방안에서 이불을 쓰고 덜덜 떠는 연기를 했다. 영화 ‘써니’에서 배우 천우희는 학교 축제날 본드를 흡입하고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연기로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두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당시 ‘마약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마약 중독은 촌스러움을 벗고, 세련돼졌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클럽과 같은 유흥시설에서 손쉽게 마약을 접하고, ‘한 번쯤은’이라는 호기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정보기술(IT) 발전도 한몫했다. 마약 유통 경로를 발달시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익숙한 젊은 층이 쉽사리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됐다.
수치가 증명한다. 대검찰청이 내놓은 지난해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 1만8395명 가운데 30대 이하가 59.8%를 차지했다. 30대 이하 마약류 사범은 2018년 5257명이었지만, 지난해 1만988명으로 109% 급증했다. 과거 50대 위주에서 젊은 층 위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마약청정국 지위도 사실상 상실했다. 유엔은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을 마약청정국 기준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2016년 25명을 기록했고, 지난해는 35명에 이르렀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올해 마약류 사범은 2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암수범죄율까지 더하면 국내 마약 인구는 40만명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수범죄는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의미한다. 범죄화돼 적발된 마약 인구를 제외하고 수십만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음지에서 마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마약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과거만 해도 ‘마약하면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요즘은 마약을 하다가 적발돼도 훈방,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감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마약류 사범으로 적발되고도 그대로 풀려나는 게 대표적이다.
마약 중독은 어떤 물질을 활용하는지만 다를 뿐 술, 담배 중독과 마찬가지다.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생존에 필요한 행위도 중독의 일종이다. 사람 뇌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늘어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구조다. 뇌는 이런 특정 행위에 대한 쾌감을 기억하고, ‘더 강하고 빠른 쾌감’을 갈망한다.
이 교수는 “축구, 야구, 테니스와 같은 운동도 지속하면 도파민이 분비되지만,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다”며 “생리적 수준을 넘어선 강력한 도파민 분비를 경험하고 나면 우리 뇌 기쁨 회로의 균형이 깨지면서 집착이 생기고, 이를 하지 않을 경우 무료해진다. 이게 바로 중독”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마약뿐 아니라, 한국이 ‘중독’에 대한 경각심이 낮다고도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중독에 대한 인식 변화의 적기였지만, 정부가 놓쳤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초기 9시와 10시 영업 제한으로 가게 문을 닫게 했는데, 이때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기였다”며 “술이나 놀이에만 몰두하던 사회에서 가족과 일상생활에서 기쁨으로 중독을 줄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정부는 어떻게 빠르게 술집들을 열게 할지 경제 고민만 했다”고 말했다.
중독은 정신건강보다 사회적 측면이 강한 질병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시설과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하다. 이 교수는 “이제 (마약류 사범을) 잡아서 처벌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정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공중보건위기 수준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정신과학 석박사를 받았다. 알코올부터 담배, 마약까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중독 관련 연구와 치료를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조선비즈는 최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이 교수와 만나 국내 마약 중독 실태와 해결 방안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마약 중독은 정신의학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
“알코올, 니코틴처럼 중독성 있는 물질을 접할 때 뇌 안에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다. 도파민은 엄마가 안아주거나, 젖을 물려줄 때도 분비된다. 먹고, 자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도 분비된다. 사람도 먹어야 살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한테는 좋은 일만 있지 않다. 나쁜 일도 있을 수 있고, 같은 우울도 사람에 따라 강도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바르게 짧게 도파민을 많이 분비하는 니즈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도파민이 분비되면 향후 작은 도파민에는 둔감해진다. 내성이 생기면서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더 센 것만을 찾게 되고, 집착, 갈망 같은 게 생기면서 생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강한 도파민을 분비한다. 이를 경험하고 나면 뇌 안에 기쁨 회로의 균형이 깨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중독이다.”
─지난해 국내 마약류 사범으로 적발된 인원만 약 1만8000명이다. 실제 마약을 접하는 인구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마약 인구가 얼마나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지.
“올해 마약류 사범이 2만명을 넘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미 2020년대 초반 1만5000명을 넘으면서 이미 심각한 단계다. 국내 마약 인구는 암수범죄율을 봐야 한다. 범죄화해 유병률이나 조사로 나타나지 않지만, 추정되는 암수범죄율을 통상 15~20배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면 40만명 가까이 된다.
단순 마약류 사범 수가 늘어난 것만이 특징이 아니다. 2019년만 해도 20대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21년 20% 이상 올랐다. 성별 비중도 여성이 20% 이상 늘었고,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고학력자도 20~30% 증가했다. 돈을 많이 버는 인구에서도 늘어났다. 과거에는 50대 이상 연령층이 마약류 사범 주범이었지만, 20대와 30대로 다양해졌다. 이른바 히로뽕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이라는 약물이 주였지만, 마리화나, LSD와 같은 환각제로 종류도 많아졌다.”
─국내 마약류 사범이 증가 원인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3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구는 사람들이 크게 늘지 않았다. 반면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외부 강력한 물질, 자극으로 괴로운 마음을 벗어나고 즐거운 마음을 늘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도박, 포르노, 마약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세계적으로 중독이 많이 늘 수밖에 없었다. 젊은 층의 경우 클럽 같은 곳에서 쉽게 마약에 노출되고 사기도 쉬워졌다.”
─마약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보고 있다. 우선 자극추구적 성향이 높은 사람이 일상생활 자극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와 신체적 질병이나 심한 통증을 겪으며 우울하거나 부정적 감정에 노출되는 경우다. 앞선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는 환경 관련 문제다.”
─지난해 국내 인구 2.6명 중 1명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았다. 효능별로 마취제를 처방받은 환자가 1122만명으로 가장 많다. 프로포폴이나 미다졸람과 같은 마취제가 건강검진 등 진단이나 간단한 시술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건강검진으로 받는 의료용 마약류는 중독 위험이 없나.
“일부 사람 중에서 취약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불면증, 불안, 우울함이 있는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만큼 의료 현장에서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일부 의사는 돈이 되니 웃돈을 받아 가며 시술하지 않아도 되는 약을 처방하는 사례가 늘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펜타닐 패치를 청소년이 사용한다. 오남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처방도 그만큼 돈이 되니 중독성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처방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확인하게 하고, 복지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의료현장 영향력 제도 변화는 복지부가 쥐고 있는데 손을 놓고 있다.”
─마약 중독은 질병인가, 범죄인가.
“따지고 보면 술, 담배 모두 중독성 있는 물질이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다만 급속 중독 시 위험이 얼마나 증가하느냐에 따라 범죄화하지만, 오피로이드 계열(마약성 진통제) 약물은 사실 위험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이 이용할 때는 강력하게 처벌하는 게 맞지만, 의약품으로 사용했다는 것처럼 사용이 법적 처벌로 어려워질 수 있어 법적으로 처벌해서 없애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선진국들도 약물 기술이 발달하면서 외부 약물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하고자 하는 수요가 계속 있는 상황에서 법적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마약과 전쟁’을 선포했던 곳은 대부분이 실패했다.
대신 법원이 계속해서 환자가 의무적으로 치료를 받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있다. 현재 마약류 사범이 많이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법무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도하기 보다는 질병으로 보고 국가 암 사업처럼 보건복지부의 영역에서 치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효과적으로 마약 중독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나.
“마약류 사범 중 기소유예, 훈방으로 감옥에 가지 않는 사람 비율이 높다. 요즘 들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범죄화하는 게 트렌드다. 유명 연예인들이 감옥에 가지 않으니 무조건 잡혀간다는 인식도 없어졌다.
이처럼 기소유예를 하고 단기간 교육을 받게 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있다. 마약류 사범 초범은 재발률이 30~40%에 이르는 데 40시간 재활교육을 받은 뒤에도 3분의 1이 재발한다.
미국 약물법원의 사례를 참고할만 하다. 미국은 다른 강력범죄와 연결되지 않은 마약 사범은 기소유예를 하는 대신 1년6개월간 사회에서 정례적인 소변검사를 하고 재활 상담, 중독 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 물론 약물 검사에서 다시 양성이 나오면 감옥에 보내기도 한다.
법원이 기소유예 판결을 해버리면 마약 중독을 관할할 곳이 그냥 사라진다. 심각한 마약류 사범을 제외하면 1만명을 관리하는데 인력 500명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마약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중독 예방 정책은 문화 예술, 체육 활동처럼 악기나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이들을 방과 후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풋볼이나 테니스, 일본은 야구, 영국은 축구와 같은 체육 커뮤니티가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 교육에서는 점차 체육 환경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나.
“국내에선 아이들의 성적을 걱정하지 건전하고, 재밌게 놀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다. 정부 부처들은 산업 육성을 해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돈 문제만 얘기한다. 정부가 아이들이 건전하게 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적기였다. 영업시간 제한으로 가족끼리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어떻게 가게들을 빨리 열게 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덕분에 다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음주 인구가 늘었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했다.
술이나 사회적 놀이에만 몰두하던 사회에서 가족들과 일상생활에서 기쁨을 느끼며 중독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결국 성인들은 다시 중독적인 것을 찾게 됐다. 아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더 짧고 강한 콘텐츠를 계속 접한다. 급해지고 충동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SNS로부터 발생하는 비교우위, 상대적 박탈감 같은 요인도 사회적인 문제다.”
─중독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게임을 얼마나 하느냐,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 하는 기준은 없다. 얼마나 우울하면 우울증이라고 하는지도 마찬가지다. 진단 기준은 크게 3가지를 본다. 조절력을 상실하거나, 중독 행동이 일상생활의 다른 생리적 기쁨보다 우선시 되는지, 부정적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지로 판단한다.
진단이 어려운 게 아니다. 치료가 어렵다. 이미 좋아하게 돼 버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물 중독은 덜 중독성 있는 약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생 치료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독의 치료는 운동이나 종교 활동과 같은 다른 중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평생 100m 달리기하듯이 치료할 수 없다. 중간중간 재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낮은 강도로 지속하는 치료 체계가 중요하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사실 별다른 게 없다. 병원에 와서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일부는 약물도 쓰고, 교육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보며 소변검사도 하고, 지역상담센터에서 상담도 한다. 중독 치료는 자주 봐야 한다. 치료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병원을 계속해서 찾는 것도 힘이 있다. 다만 의사 혼자 할 수는 없다. 지역상담재활센터에서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
─식약처에서 마약중독재활센터를 늘리고 있다.
“식약처는 관리·규제기관이다. 마약 관리에 관한 법이 처벌·감시에 관한 법인데 이걸 그대로 두고 치료까지 도맡는 것은 난센스다. 재활 치료 목적은 보건복지 영역이다. 과거만 해도 의사, 상담사들이 마약 환자를 거의 보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도 마찬가지다.
정신과에서 보다 보니 생긴 것이다. 마약중독이 다른 중독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 양성은 또 어떻게 하나. 식약처에는 재활 전문가가 없다. 재활 치료는 정신보건의 영역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약 중독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은 어떤 인원들인가. 이들의 경우 본인 의지로 병원을 찾나, 타인에 의해 찾는가.
“일반적으로 초기에 병원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재활센터에 자발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40대와 50대로 10년 넘게 중독을 겪으며 괴로움을 참지 못해 찾아온다. 젊은층은 가족 권유로 오는 경우도 있다.
중독은 특히 치료 정책이라는 게 존재한다. 마약이나 술을 팔아 큰돈을 버는 산업적 마케팅이 있다. 사용을 부추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치료하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10년이면 재산을 탕진한다. 그래서 치료비를 지원한다. 미국은 법도 만들어져 있다. 감옥에 가두면 돈이 더 든다. 사회에 두고 치료를 하는 게 효과적이다. 범법자를 왜 치료하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 공익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공중보건 해악을 줄이자는 의미로 봐야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문은.
“중독은 정신건강보다 사회적 측면이 강한 질병이다. 잡아서 처벌하는 시대는 지났다. 의무 치료를 많이 하고, 의료에서도 인프라가 조절로 갖춰지지 않는다. 의료계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할 수 없다.
정부에서 인프라나 인센티브를 강력하게 제공해야 의료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감염병과 같은 공중보건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수준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마약류 사범을 폭발적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