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이상기후로 폭염과 폭우가 이어지는 가운데 모기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모기 매개 질병이 확산하고 있다. 모기 서식지가 온대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국내에서도 7월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말라리아 환자가 400명을 훌쩍 넘으며 지난해 전체 환자 수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20년 만에 말라리아 감염 사례가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말라리아 예방 백신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과 미국 바이오 전문매체 피어스파마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미국은 20년 만에 8건 이상의 말라리아 감염 사례가 확인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모두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 주민으로 해외 여행 이력은 없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미국 내 말라리아 확산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열원충에 의해 발병하는데, 모기에 물리면 모기 침샘에 있던 열원충이 몸에 들어와 간에서 잠복기를 보내며 증식한 뒤 적혈구로 침입해 오한·발열·설사·두통·근육통 등을 일으킨다. 뇌에 침투할 경우 병변을 일으키고, 뇌혈관을 막아버리면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말라리아 감염 건수는 2억4700만건으로 전년보다 1%가량 늘었다. 사망자 수는 무려 10% 증가한 62만5000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말라리아 감염자가 큰폭으로 늘어나면서 비상이 걸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평년 대비 5배 늘어났고, 말라리아 감염자 수는 26일 기준 올해 426명으로, 지난해 전체 환자수에 육박하고 있다.
재키 쿡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 말라리아 역학 부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높은 기온은 모기 안에 있는 말라리아 기생충의 발달을 가속화하고, 기후변화로 전 세계에 강한 폭풍과 폭우가 이어지면서 모기의 개체 수는 증가할 것”이라며 “속도는 느리지만 현재 여러 유망한 백신 후보물질이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WHO가 현재까지 사용을 승인한 말라리아 백신은 2021년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개발한 ‘모스퀴릭스(RTS,S)’가 유일하다. GSK가 2019년부터 가나, 케냐, 말라위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생후 5~17개월 영·유아 80만명을 대상으로 시범 접종을 한 결과 모스퀴릭스의 예방률은 39%, 중증 예방률 29%로 나타났다. 예방 효과가 비교적 높지 않았지만, WHO는 모스퀴릭스로 보호받는 영·유아 비율이 70% 미만에서 90% 이상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WHO는 생후 5개월부터 4차례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한편에선 현재 백신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능을 가진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페리에 연구소와 호주의 피터 도허티 감염·면역 연구진들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의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진은 쥐 실험에서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열원충의 감염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구진도 말라리아 mRNA 백신을 개발 중이다.
앞서 지난 4월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 ‘R21′은 가나에서 세계 최초로 승인됐다. 말라리아 예방율은 모스퀴릭스보다 약 2배 높은 75%에 달한다. 현재 WHO도 R21의 추가 승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