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과학자들이 중년 시기 혈장 단백질로 미래의 치매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번 연구는 대규모 조사를 통해 치매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종류를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치매 발병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키난 워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노화연구소(NIA) 수석연구원 연구팀은 중년 시기 발견되는 혈장 단백질이 10~25년 후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19일(현지시각) 공개했다.
연구팀은 혈장 단백질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중년 성인 총 1만981명을 대상으로 4877개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했다. 조사는 25년간의 치매 데이터를 단백질의 기능 이상과 구조변형 여부 등을 추적하는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플랫폼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혈장 단백질은 혈액에 존재하는 단백질 중 혈구에 포함된 것 이외의 단백질을 의미한다. 혈장은 단백질 농도가 짙은 용액인데, 혈장 중량의 7~8%가 혈장 단백질이다. 기능도 다양해 인체 내 물질운반과 면역, 혈액 응고, 염증,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항상성)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이 조사한 혈장 단백질 4877개 중 치매와 관련된 단백질은 32개다. 이 단백질들은 면역과 응고, 시냅스 기능, 세포외 기질 조직에 관여해 15년 안팎으로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장 단백질들은 인체 면역과 혈관을 통해 치매의 직접적인 원인인 뇌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조절에 관여하고 궁극적으로 신경퇴화를 일으킨다.
혈장 단백질에 따라 치매가 발병하는 속도도 달랐다. 백혈구가 질병에 대항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인터루킨-3(IL3)’과 세포 내 신호 전달 단백질 ‘전사활성화제(STAT)’는 15년 이내 치매 환자에게 확인됐다. 담즙산 생합성과 과립구 접착, 세포 기질을 분해하는 ‘매트릭스 메탈로프로테아제(MMP)’ 단백질 억제는 15년 이후 치매 환자에게 주로 나타났다.
치매 발병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단백질은 ‘GDF15′다. 대사와 면역조절 기능에 관여하는 GDF15는 치매 발병과 연관돼 있지만, 치매 환자의 뇌 조직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치매 환자의 혈장에서 GDF15를 발견했고 치매와 가장 강력한 연관성이 있음을 입증했다. 특히 GDF15는 단기간이 치매가 발병한 환자와 15년 이후 치매가 발병한 환자 모두에게 모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치매에 대한 25년 이후의 단백질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미국 ‘지역사회 동맥경화 위험(ARIC)’ 연구에 참여한 중년 성인 4110명과 유럽 ‘알츠하이머 의료 정보 프레임워크(EMIF-AD)’ 972명의 데이터를 추가로 코호트 분석했다. 그 결과, ARIC에서는 32개 단백질 중 25개(78%)가, EMIF-AD에서는 22개(69%)가 환자들의 혈장에서 측정됐다.
이번 연구는 단백질과 DNA, 리보핵산(RNA),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한 혈액 바이오마커로 치매를 예측한 데에 의의가 있다. 기존에는 뇌에서 산소가 적은 부분을 방사선으로 촬영하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과 인지능력 저하검사, 뇌척수액 분석 등으로 치매를 진단해야 했다. 이제는 혈장 단백질을 분석하는 바이오마커로 효율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진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달 16~2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2023 알츠하이머협회 국제회의(AAIC)에서도 바이오마커가 치매 진단의 새로운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연구팀은 “치매 위험과 관련된 중년의 단백질학적 특징을 이해하면 관련 생물학적 경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질병의 동인을 식별하는 데에 용이하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혈장 단백질이 질병 과정 초기에 혈관이나 면역 경로를 통해 작동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참고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f5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