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나가 글로벌 백신 생산기지를 한국에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모더나 공동설립자 겸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 회장은 6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기자와 만나 “모더나가 현재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같은 추진 계획을 밝혔다. 아페얀 회장은 “캐나다와 영국, 호주에 생산 공장을 먼저 지을 계획이며, 한국도 어느 정도 조건이 맞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페얀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올해 초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찾아가 만난 인물이다. 그는 “올해 들어 이 회장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5번 이상 만나 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에 대한 토론을 했다”며 “이 회장이 바이오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은 바이오 벤처 생태계를 키우는 데 진심”이라고 말했다.
아페얀 회장은 지난 1999년 미국 벤처캐피탈(VC)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을 설립한 거물급 바이오 벤처투자자다. 지난해 기준 54억 달러(약 7조400억원) 규모의 9개의 펀드를 조성했다. 2010년까지 매출이 없던 작은 연구소이던 모더나를 10년 만에 전 세계 백신 업계 2위로 키운 주인공이다.
아페얀 회장은 캐나다 맥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공학과 박사를 받고 1989년 바이오 장비 전문 바이오텍인 ‘퍼셉티브’를 창업했다. 이후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을 포함한 수십개의 바이오 기업 창업에 참여했다.
이날 만난 아페얀 회장은 “해결책을 갖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아페얀 회장은 최근 반도체를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를 점찍은 이재용 회장에 대해 “그는 바이오 생태계 육성에 진심인 사람”이라며 “주력 사업을 바이오로 전환하면서 빠른 성장을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아페얀 회장과 일문일답.
-이재용 회장과는 얼마나 자주 만나나.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몇 번일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것보다는 많이 만났다. 올해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비롯한 공식 행사가 많아서 다섯 번 정도 만났다. 오프라인 미팅 말고 온라인으로는 더 자주 만난다.”
-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나.
“나와 대화할 때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온통 바이오뿐이다. 바이오 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키우려고 내게 조언을 구하고는 하는데, 사실 조언이라는 표현보다 동료로서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바이오 산업에서만 36년 일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분야에서는 내가 그의 멘토가 되겠지만, 때로는 그가 나의 멘티가 되기도 한다.”
-삼성그룹이 반도체에 이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를 택했다. 어떻게 보나.
“이 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세계 수준으로 키운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쉽지 않았을 거다. 자신의 기업만 키우는 게 아니라 바이오 벤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육성한다는 전략도 긍정적으로 본다. 삼성이 한국 바이오 생태계를 만들 거라고 본다.”
-최근 한국에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 투자 계획이 있나.
“최근 한국에 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 회장과 친해서 그런지 몰라도 특히 제조나 생산 기술을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관심은 아주 크지만, 아직 누가 어떤 분야에서 잘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신약개발이나 유전자치료제 같은 새로운 모달리티(치료법) 분야는 한국이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 바이오에 투자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면 난 아직 대답할 준비가 안 돼있다. 다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이 특히 눈여겨보는 기술이 있나.
“아무래도 플랫폼 기술이다. 모더나가 mRNA 백신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그게 뭔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매출을 포기하면서까지 플랫폼 R&D(연구개발)를 했기 때문에 지금 빛을 보게 된 거다. 현재 모더나의 자체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 중인 후보물질만 50개 정도다. 최근 항암 백신도 세계 최초로 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꼭 투자해야 하는 기술이다.”
-최근 모더나가 미국 케임브리지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제조공장 구축에 나섰다. 한국도 후보에 있나.
“모더나가 현재 mRNA 백신 파이프라인을 늘리고 있는데, 기본적인 생산 공장은 필요할 거다. 우선 캐나다, 영국, 호주가 가장 먼저 진행될 거고, 한국도 어느 정도 조건이 맞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mRNA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 극소수다. DP(완제의약품)와 DS(원료의약품) 생산이 모두 가능한지, 얼마나 다양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지가 공장이 들어설 나라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 조언을 한다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풀려면 우선 현재 뭐가 부족한지, 어떤 게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시장을 모른다면 자국의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그들은 굉장히 많은 기업들을 만나면서 시장이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 투자자들이 반응하고 인정받는 기술이라면 그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