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세계 최대 자동차로 키운 도요다 쇼이치로(豊田章一郞·98) 명예 회장이 올해 2월 별세했다.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심부전은 심장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를 뜻한다. 사람의 심장은 1분에 60~70번 뛰며 혈액을 퍼 나르는데, 심장이 늘어져서 혈액을 전달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엔진(심장)이 퍼진 상태다.
10년 전만 해도 심부전으로 쓰러지면 5년 안에 10중 7명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노바티스가 심부전 신약 ‘엔트레스토’를 개발하고 상황이 바뀌었다. 이 약은 늘어진 심장 근육을 수축시켜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약이 나온 이후 심부전 환자의 5년 이내 사망률이 절반으로 줄었다. 노바티스는 엔트레스토 한 품목으로만 매년 약 4조 5330억 원을 벌어들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작년 연 매출이 3조 원이었다.
의료계에선 엔트레스토를 ‘15년 만에 나온 혁신 신약’이라고 부른다. 그 당시 심부전 치료제 개발은 제약사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과제로 통했다. 심부전 사망률은 계속 높아지는데, 새로운 치료제는 30년 넘게 개발되지 않았다. 노바티스 역시 다른 제약사들과 마찬가지로 수 십년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노바티스 신약개발부문의 지아지첸(JIA, ZICHEN)박사는 “엔트레스토는 새로운 작용 기전을 통해 치료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혁신 신약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지아 박사는 양손 손동작으로 두 개의 약물(주먹)이 합쳐진 후 종횡으로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합이 어려운 두 개의 다른 물질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약물이 탄생했다”며 “두 분자가 초분자 복합체라는 것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혁신 기술(테크놀로지)”이라고 덧붙였다.
제약 산업은 경쟁이 매우 치열한 시장이다. 질환에 따라 수많은 경쟁 제품이 있는가 하면 아무 경쟁 제품이 없는 분야 역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을 성공시키려면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에 빨리 진출해서 시장을 선점하는 혁신 전략과, 환자 수요를 파악해 더 나은 제품을 출시하는 최고 전략이 있다. 노바티스는 이 전략을 시장에 따라 적절히 구사하는 셈이다.
지아 박사는 중국 톈진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중국 국영기업 시노펙(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스위스로 건너가 취리히 연방공대(ETH)에서 바이오 엔지니어링 분야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바티스 스위스 바젤 본사에서 17년째 근무하는 그는 신약 개발 중에서도 원료 의약품(API) 공정 개발 약제 개발 등을 총괄한다. 엔트레스토 개발 과정에도 참여했다 이달 중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바이오코리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지아 박사를 만났다. 이날 인터뷰에는 조하나 한국노바티스 의학부 총괄이 함께 참여해 도움말을 줬다. 조 총괄은 강원대 의대를 졸업한 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지냈고 사노피 젠자임 코리아 의학부 총괄을 거쳐 노바티스에 합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엔트레스토 개발 배경이 궁금하다. 어떻게 개발하게 된 건가.
“1990년대 효과적인 심부전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수많은 다국적 제약사가 뛰어들었다. 그때는 혈관을 이완시키는 펩타이드(단백질 조각)인 네프릴리신을 억제시키는 단독 성분(NEPi)을 찾으려는 시도가 잇따랐다. 혈관이 늘어지지 않도록 해서 심장을 뛰게하는 식이다. 그런데 효과 좋은 단독 성분을 찾아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업들이 다시 시도한 게 복합제였다.”
–다른 제약사들도 심부전약을 개발하려고 복합제를 시도했다는 뜻인데, 노바티스만 성공한 비결이 있나.
“그 당시이 분야를 연구하던 제약사는 네프릴리신 억제제와 안지오텐신 전환 요소 억제제(ACEi)를 병용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안지오텐신은 혈압을 높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혈관을 활성화하는 약과 혈압을 낮추는 약(혈압강하제)을 결합해 심부전을 치료하려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접근법, 즉 네프릴리신 억제제에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를 결합하는 방법(ARNi)을 고민했다.”
–그렇게 선택된 성분이 사쿠비트릴과 발사르탄이란 건가.
“그렇다. 노바티스는 두 화합물에 주목했다. 사쿠비트릴은 네프릴리신 억제제이고, 발사르탄이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로 혈관 수축을 막는다. 발사르탄은 알려진 허가된 의약 화합물이지만, 사쿠비트릴은 의약으로 허가된 적이 없는 물질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 엔트레스토(LCZ696)이라는 새로운 약물이다.”
–발사르탄과 사쿠비트릴과 합친 게 어떤 특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노바티스는 사쿠비트릴과 발사르탄을 하나의 새로운 화합물인 초분자 복합체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 (조하나 의학부 총괄) “두 개의 다른 반응을 가진 화합물이 초분자복합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두 개의 물질을 결합했을 때 그런 효과가 날 것으로 미리 예측한 건가.
“엔트레스토의 초분자 복합체 결정구조는 발사르탄과 사쿠비트릴의 분자가 각각 6개, 나트륨 원자가 18개, 물 분자 15개로 구성돼 있다. 이 새로운 화합물이 기존의 개별 물질과는 다른 물리 화학적 특성으로 몸속에서 용해되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방출하게 한다.”
–글로벌 제약사의 최신 개발 트렌드는 어떤가.
“디지털이다. 요즘은 디지털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어서, 노바티스 기술 연구개발(R&D)팀에서 따라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이런 정보통신 기술을 신약 개발에 적극 적용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줄 수 있나.
“새롭게 개발하려는 분자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해당 물질의 용해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걸 이해하려면 수십번의 실험을 했어야 했다. 용매를 바꿔가면서 측정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식이다. 그러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로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을 활용해서 물질이 어떻게 용해가 될지를 미리 예측한다. 그러니 개발 시간도 줄고, 본연의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
–노바티스가 디지털 신기술, 예를 들어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적극 적용하고 있다고 보면 되나.
“(조하나 의학부 총괄) 그 부분은 제가 답을 하는 게 좋아 보인다. 노바티스는 인공지능(AI), 머신 러닝(ML) 등 새로운 기술(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신약 개발에 접목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머신 러닝, AI 기술로 신약 후보물질 발굴, 개발 속도를 단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머신 러닝으로 잠재력(포텐셜)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다면 실험실에서 일일이 다 확인해야 했던 작업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
–그나저나 이번 바이오코리아에서 발표한 내용도 물질 결합에 대한 내용이었나.
“이번엔 의약품의 품질 관리의 과학적 접근 방식을 주제로 발표했다. 두 개의 케이스 스터디(사례 분석)로 설명했는데, 하나는 바이오 촉매, 다른 하나는 공정 분석 기술(PAT)이었다.”
–바이오 촉매는 뭔가.
“엔트레스토를 개발할 때도 바이오촉매를 적용했다. ‘촉매’는 말 그대로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늦추는 등 영향을 주는데, 이런 촉매제를 활용하면 화학 반응을 쉽게 일으킬 수 있고, 또 화학 반응에 필요한 물질의 투입량이나 폐기물을 줄일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화학반응을 선별해서 일으킬 수도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우리 팀은 제품 개발에 앞서 원료의약품(API)을 받아서 이걸 그대로 쓸지 아니면 좀 더 나은 형태로 바꿔서 활용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제품 양산에 무엇이 가장 좋은 형태가 될지 고민해 결정하는 것이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촉매를 잘만 활용하면, 이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 그 시간을 절약하면 과학자들이 더 많은 물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효율성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