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백신연구소 염정선 대표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코로나19 변이가 유행한 지난해 백신을 맞았는데도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람이 많았다. 60대 이상 감염자의 절반이 2차 접종을 마친 경우였다. 백신을 맞았는데도 이처럼 감염된 사례를 ‘돌파 감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돌파 감염은 코로나19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수두나 독감 인플루엔자 같은 다양한 감염병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사람마다 백신 항체 생산량과 면역력이 다르고, 변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돌파 감염을 이해하려면 ‘백신’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의 항체는 바이러스라는 외부 침입자(항원)가 들어오면 그 돌기에 달라붙어 면역 세포의 공격을 유도한다. 백신의 원리는 항체가 바이러스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를 먼저 접하게 하는 것이다.

적을 감지하는 보병(중화항체)이 바이러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모의 훈련을 시키고, 진짜 바이러스가 공격하면 신속하게 주력군(T세포) 동원령을 내리는 식이다. 바이러스가 변이로 모습을 감추면 보병이 알아차릴 수 없고, 알아차리고 동원령을 내려도 주력군(면역력)이 시원찮으면 함락당하고 만다. 이 때문에 변이 바이러스가 없다고 해도 백신의 예방 효과는 60세 이상 고령층부터 뚝 떨어진다.

차바이오텍 계열사인 차백신연구소 염정성 대표는 “정부가 고령층 독감 백신 무상접종 사업을 하고 있지만, 예방 효과는 사실 미지수다”며 “지금까지 백신은 소아청소년을 위한 전유물로 생각됐지만, 고령화 시대에 맞춰 노인을 위한 백신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염 대표에 따르면 차백신연구소가 실시한 동물 실험에서 독감 백신을 젊은 쥐와 늙은 쥐에 투여한 결과 젊은 쥐와 달리 늙은 쥐의 면역반응은 충분히 오르지도 않고, 백신 접종 이후 지속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데 늙은 쥐에 독감 백신과 면역증강제를 함께 투여했더니, 젊은 쥐 수준으로 면역 반응이 좋아지고 지속력도 늘어났다. 그러니 요즘에는 백신을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사들 사이에는 효과 좋은 면역증강제가 화두다. ‘90%’ 예방효과로 유명한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인 싱그릭스가 면역증강제를 썼다.

그러나 면역증강제는 기술적 장벽이 높다. 면역증강제의 기전은 면역세포의 TLR(톨유사수용체)을 자극해, 면역세포를 깨우는 것인데, TRL의 종류도 많고 기전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SK바이오사이언스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개발한 면역증강제를 썼다.

차백신연구소 염정선 대표가 공개한 면역증강제의 효과./김명지 기자.

차백신연구소가 개발한 면역증강제 ‘엘-팜포(L-pampo)’와 ‘리포-팜(Lipo-pam)’는 TLR 2,3을 자극한다. 현재 나와있는 가장 최신 버전의 면역증강제는 TLR4를 자극한다. TLR 2,3를 각각 자극하면 TLR4를 자극하는 것보다 면역 증강 효과가 떨어지는데, 둘을 섞었더니 그 효과가 10배 이상 좋았다는 것이 염 대표의 설명이다.

염 대표는 1985년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분자진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듬해 녹십자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거쳐 2000년 차백신연구소에 합류했다. 국내 재조합 단백질 백신, 면역치료제 전문가다.

염 대표는 “대학원에 다닐 때 분자 진화가 이렇게 실용적으로 쓰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며 “생명과학은 실용적이고 섬세해서 여성 과학자들이 도전할 만한 분야이니 도전해 보라”고 했다. 서울 삼성동에서 차백신연구소 염정선 대표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인을 위한 백신을 개발한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인가.

“과거에 노인용 백신이 없었던 것은 노인 인구가 적고, 기대수명이 짧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60세부터는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환갑에 백신을 접종해서 90세까지 감염병에서 보호를 하면 30년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면역을 높인다는 건가.

“면역세포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의 침입자를 싸워서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세포 노화로 반응이 떨어진다. 우리가 개발하는 면역증강제는 면역 세포에 있는 TLR이라는 수용체(리셉터)를 인위적으로 자극해서 ‘바이러스와 싸움을 준비해’라는 시그널을 준다.”

-톨유사수용체(TLR)은 뭔가.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진화의 산물이다. TLR은 특정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위험한 것이 왔다. 싸움을 준비해’라고 면역세포에 시그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서 작용하는 TLR이 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는 세포 안을 공격하고, 박테리아는 세포 밖을 공격하는데, 여기에 작용하는 TLR들도 세포 안팎에 분포하게 된다.”

차백신연구소 염정선 대표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그럼 TLR기반의 면역증강제는 어떻게 만드는 건가.

“박테리아와 비슷하게 생긴 껍데기다. 이 껍데기를 집어 넣어서 TLR이 면역세포에 ‘싸움 준비’ 버튼을 누르게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그렇게 면역세포를 자극하면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거 아닌가.

“면역증강제는 불특정 면역세포를 자극하는 게 아니다. 백신에 면역증강제를 섞으면, 그 항원에 대한 면역만 올리는 식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사람 몸 전체가 반응하는 것 아닌가.”

-TLR2,3을 섞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둘을 한꺼번에 자극했더니 면역 증강 효과가 시너지가 났다. 예를 들어 2를 쓰면 100, 3를 써도 100의 효과가 나왔다면, 둘을 섞으면 200이 효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2와 3을 한꺼번에 자극했더니 1000의 효과가 나왔다. 서로의 영역을 보완하면서 상승효과를 보였다.”

-그런데 애초에 둘을 섞은 배경이 궁금하다.

“면역 세포를 깨우려면 T세포 반응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면역증강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시중에 나온 면역 증강 물질을 추려서 이것 저것 수십번을 섞어 본 결과 가장 효과적인 물질을 찾아냈다. 그렇게 신물질 특허를 받을 수 있었다. 초기 연구진들은 기름 성분인 콩기름과 스쿠알렌도 섞어봤을 정도다. (웃음) ”

-대상포진 백신도 개발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방식의 백신인가.

“싱그릭스와 같은 방식이다. 예방효과는 싱그릭스와 동등한 수준이 충분히 되고, 통증은 덜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싱그릭스는 백신을 맞으면 굉장히 아프다는 후기가 많다. 백신 업계에서는 싱그릭스 통증 백신에 쓰인 면역증강제 때문이라고 본다. 싱그릭스에 쓰인 면역증강제가 세포독성이 있지만 안전성을 인정을 받아 쓰인다. 면역증강제를 뺀 싱그릭스 백신 임상에서는 통증 수치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 쓰이는 대상포진 백신은 크게 두 가지다.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위력을 약하게 만들어서 주사하는 생(生)백신으로 조스타박스와 스카이조스터가 있는데, 예방효과가 70% 수준이다. 싱그릭스는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떼어내 만든 사(死)백신인데, 예방효과가 90%가 훨씬 넘는다. 이 백신은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면역증강제(AS01B)를 썼다.

-차백신연구소가 개발한 면역증강제는 통증이 없나.

“면역증강제를 적용한 B형 간염 백신을 개발 중이고, 현재 임상1상 중인데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숫자는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통증이 적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생백신을 쓰는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차백신연구소 염정선 대표

-어떤 뜻인가.

“대상포진은 내 몸에 있는 수두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다가, 면역이 약해지면 그 부분을 공격해 발현되는 질환이다. 이미 수두 바이러스가 내 몸에 돌아다니고 있는데, 다시 그 생백신을 집어 넣어 예방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단 한번도 걸린 적이 없다면 생백신을 맞힐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암 백신도 개발한다고 들었다. 면역증강제가 기반이 되는 백신이라면 면역항암제의 일종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가장 효과적인 암 치료법은 수술이다. 문제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100% 완벽하게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술 후에도 몸 속에 남아있는 암세포가 재발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수술로 제거가 안된다. 암 백신은 이렇게 자잘하게 있는 암세포들을 제거하는 백신 형태의 면역치료제다. 암 재발 방지 용도다.”

-그나저나 면역증강제 효과가 좋다면, 면역증강제만 팔아도 되지 않나. 왜 백신을 개발하려고 하나.

“면역증강제 자체가 상업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면역증강제로만 허가받은 의약품이 아직 전세계적으로 없는 것으로 안다. 일단 백신에 장착해 허가를 받아야 면역증강제도 팔 수 있다. "

-글로벌 임상 3상, 상업화를 하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나.

“우리는 기술 이전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임상 3상이나 상업화 단계는 글로벌 제약사가 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 면역증강제에 대해서는 정말 자신이 있다. 하지만 임상을 끝까지 끌고 가기에는 우리 규모의 회사에서 쉽지 않다. 글로벌 규모의 회사라면 마케팅도 훨씬 수월하게 될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언론이나 정부가 백신의 정확한 효과를 대중들에게 좀 더 잘 알려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부가 기계적으로 가격으로 입찰해 국산 백신을 구입해 무상 배포하는 식으로 공급한다. 효과없는 백신인데도, ‘정부가 다 사갔고, 오히려 남아서 버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러면 도전이 없고, 발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