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산업이 ‘제2의 반도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은 의료기기산업이 오는 2029년 888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제조업에 속하는 의료기기산업의 성장은 고용 창출, 투자 확대와 같은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의료기기산업 종사자는 지난해 기준 국내 보건 산업 종사자 중 가장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우리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산업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배경이다. 조선비즈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기업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고(故)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상징하는 물품은 휠체어다. 호킹 교수는 지난 2014년 미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진행된 영상 회의에서 “나를 약으로 치료할 수 없지만, 기술은 나를 세상과 교류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22세에 근육이 약화하는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호킹 교수는 거의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넓은 우주의 세계를 여행했다.
휠체어는 누군가에게 단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이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교류의 수단이다. 과거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움직였던 휠체어는 이제 기술 발전으로 도움 없이 탑승자가 원하는 대로 주행할 수 있다. 자존감이 떨어진 이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포함해 개인 이동수단을 만들던 하이코어가 전동휠체어 사업에 진출한 배경이다. 박동현 하이코어 대표는 “시대가 변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기준도 변했다. 과거에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했다”며 “사고를 당할 수 있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유도를 할 정도로 건강했다던 그는 지갑에서 장애인증을 보여줬다.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은 박 대표는 30분 이상 걸을 수 없다고 했다.
하이코어는 한양대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합성 모터 기술을 기반으로 2012년 창업한 회사다. 당시 한양대 기술지주회사는 합성 모터 기술을 외부에 매각할지, 실제 상용화에 나설지 고민했다. 기술지주회사 팀장으로 근무했던 박 대표는 지도 교수에게 사업화를 제안해 회사를 직접 맡기로 했다.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합성 모터 기술을 기반으로 자전거와 개인 이동수단을 만들어 해외에 진출하려던 계획이 2020년 때마침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물거품이 됐다.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하늘길이 막히면서 미국과 독일 법인까지 세워 준비한 사업이 막혔다. 애초부터 해외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터라 타격은 컸다. 국내에선 해외와 달리,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비율이 낮아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막막한 상황에서 현대자동차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동차와 함께 최종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이동 수단에 관심이 많았다. 출퇴근을 예로 들면 집에서 나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회사 근처에 하차한 뒤 회사까지 주로 도보를 이용한다. 도보 과정을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 같은 기기로 대체하는 것이다. 모빌리티 업계는 이를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고 부른다. 하이코어가 보유한 합성 모터 기술은 현대차의 구상과 맞아떨어졌다.
박 대표는 “현대차가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는데, 이미 90% 정도 기술을 보유한 상태였다”며 “2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2달 만에 해냈고 이후 한진, KT 등 다른 대기업들도 우리 기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관심을 가지자 자연스레 시장 수요가 생겼다. 장애인 단체와 병원에서 전동휠체어를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율주행 전동휠체어 40대를 서울대분당병원에 공급했다.
현재 하이코어가 개발한 휠체어는 총 3종이다. 완전 자율주행형, 일반형, 안전형 전동휠체어다. 일반형은 단순한 전동휠체어이며, 안전형은 초음파센서 같은 부품을 적용했다. 안전형의 특징은 충돌센서를 탑재해 장애물을 인식하면 멈춰준다. 자율주행 전동휠체어는 라이더, 카메라, 미니컴퓨터와 같은 자율주행 센서를 탑재한다. 속도는 시속 8㎞, 주행거리는 45㎞에 이른다. 한 번 충전하면 10시간을 쓸 수 있다.
하이코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동휠체어 의료기기 인증을 신청할 계획이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제품인 만큼 국산화로, 독일 오토복, 일본 야마하 등 해외 전동휠체어와 비교해 가격을 절반가량 낮췄다.
박 대표는 “현재까지 80억원정도 외부 투자를 받았고, 올해 6월까지 100억원을 추가로 유치할 계획”이라며 “기존 200대 생산능력을 1000대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매출 예상치는 70억~80억원 규모로, 내년은 200억원 이상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인천 부평구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에서 박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하이코어는 어떤 회사인가.
“근거가 있는 미래 기술을 만드는 회사다. 2012년 설립돼 초기 자전거와 같은 개인형이동수단을 만드는 회사였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전동 카트 같은 모빌리티 제품을 만들고 있다.”
-핵심 기술은.
“모터를 합성하는 기술이다. 모터가 하나씩 들어 있지 않고 2개 이상 들어가는 것이다. 컴퓨터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하나만 들어갔지만, 이제는 여러 개가 들어간다. 합성 모터를 경량화할 수도 있고, 소프트웨어도 개발할 수 있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이는 과거 한양대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한 학생의 아이디어로 개발됐다. 한양대 기술지주회사에서 당시 기술을 외부에 팔지, 개발해 제품을 만들지 고민했었다. 그러다 지도 교수에게 사업화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창업했다.”
-전동휠체어를 만들기로 한 계기는.
“코로나19가 컸다. 원래 수출용으로 자전거 같은 제품을 만들었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출이 어렵게 됐다. 당시 비행기도 다 끊어지지 않았나. 그 시기에 우연히 현대차로부터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함께 해보겠냐고 제안받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이미 90% 정도 기술을 가진 프로젝트였다. 2년 걸린다고 했었는데 2달 만에 해냈다. 대기업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처음 해봤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이후 한진(002320), KT(030200)도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시장을 계속 두드리다 보니 장애인 단체나 병원에서 수요가 생겼다. 기업들이 원하는 것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 수요가 나타난 것이다. 이미 양산을 끝내고 판매 중이다. 자율주행 전동휠체어는 서울대분당병원에 40대 공급했다. 저도 몸이 온전하지 않다. 과거 유도도 했었는데, 사고를 당한 뒤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30분 이상 걷기가 힘들다. 자연스레 휠체어에 관심이 더 생겼다.”
-진동휠체어 종류는 어떤 게 있나.
“완전 자율주행형과 일반형, 안전형 등 3종류를 개발했다. 완전 자율주행형은 사실 상업적으로 아직 돈이 안 된다. 미래를 보고 개발한 제품이다. 일반형은 일반 전동휠체어로 이해하면 되고, 안전형은 충돌센서를 적용한 게 특징이다.
구동 원리는 기본적으로 다 같다. 자율주행제품은 라이더, 카메라, 미니컴퓨터가 탑재됐다. 안전형의 경우 초음파센서 같은 부품을 적용했다. 일반형은 굉장히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시속 8㎞ 속도로 주행한다. 주행거리는 45㎞ 정도로, 한 번 충전하면 10시간 정도 간다.”
-진동휠체어는 보급 대상이 누구이며 일반 휠체어와 비교하면 앞으로 시장이 어떤가.
“노인과 환자, 장애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장애인 기준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사지가 멀쩡하면 장애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언제 사고를 겪을지 모르고, 고령화 가속화하며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추세를 고려하면 모두가 타깃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장애인을 위한 장비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이용하지 않나. 전동휠체어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이동용으로 전동휠체어를 많이 쓰고 있다. 인도를 이용할 수 있고, 유류비와 주차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잠재력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평균 기대수명이 85세 이상이다. 전동휠체어는 통상 60세 이상이 타는데, 일본의 경우 25% 정도 이용한다. 한국은 2%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최근 여러 기업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만큼 시장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여러 기계와 전자 장치들이 들어가는데 제품 가격이 비싸지 않나.
“현재 300만원대로 잡고 있다. 해외 제품들이 600만~700만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 수준이다. 자체 기술력이기 때문에 가격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100만원대 저가 중국산 제품도 있지만, 품질이 다르다. 과거에 용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선택권이 없다보니 가격이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 개발사들은 자체적으로 가격을 내릴 수 있다. 우리도 개발사다 보니 300만원대로 맞출 수 있었다.”
-구매할 때 정부에서 보조금이 별도로 나오나.
“일반인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고 장애인만 지원 대상이 된다. 다만 장애인 중에서도 실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적다. 전체 장애인 중 1%밖에 안 된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기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 기준을 보면 리튬형 제품은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규정은 그대로다. 지금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라는 것과 비슷하다.”
-해외에서 생산하면 가격을 더 내릴 수 있지 않나.
“중국, 대만, 베트남과 같은 지역에서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기술유출 문제를 고려해 일부 제품만 해외서 생산하려 한다. 제품을 뜯어 봤을 때 카피가 불가능한 소프트웨어 같은 경우 국내서 하고, 하드웨어 같은 부문은 외국에서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외부 투자 유치 금액은.
“80억원 정도 된다. 6월까지 추가로 100억원을 더 받을 계획이다. 현재 FI(재무적 투자자) 형태로만 받고 있다. SI(전략적 투자자)는 회사 경영에 간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SI는 최후의 보루로 보고 있다. 그래도 어려운 와중에 도움을 주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투자 계약상 외부로 기업명을 밝힐 수는 없다.”
-현재 연간 얼마나 빨려나가고 있나.
“작년 12월부터 월 5억원가량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70억~80억원을 예상한다. 많이 벌면 100억원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내년에는 2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문은.
“정부 각 기관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부처별로 협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업 입장에서는 각기 다른 부처라도 하나로 지원받는 게 좋다. 생태계가 커져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안과 노인들에게 제품이 대중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제도를 유연하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