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가 되면서 계절성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재채기와 코막힘 등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조선DB

얼마 전 종영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The Glory)’에서 문동은(송혜교 분)은 고교 담임 선생님에 대한 복수를 ‘꽃가루 알레르기’로 합니다. 담임의 집 안을 온통 꽃으로 채워서, 알레르기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식입니다. 드라마처럼 단순 꽃가루 알레르기로 사람이 사망하진 않지만, 알레르기가 급성 천식으로 진행하게 되면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급성 천식이 아니라도 봄가을 환절기가 되면 시도때도 없이 콧물이 나고 눈이 붓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계절성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있는 집에는 항(抗)히스타민제가 가정상비약입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국내 항히스타민제의 시장은 약 1700억 원 규모로 집계됩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여 만에 마스크를 벗으면서 올 봄에는 알레르기로 병원과 약국을 찾는 환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경희대의료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손경희 교수는 “소아 및 노인 천식으로 급성 알레르기 환자가 많이 늘었다”라며 “코로나 뿐만이 아니라 인플루엔자, 아데노바이러스 등 바이러스 감염도 늘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알레르기 반응은 몸에서 분비되는 ‘히스타민’이란 면역물질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 세균과 같은 침입자가 들어오면 히스타민이 분비돼 주위 모세혈관을 확장시키고, 이렇게 확장된 혈관을 따라 백혈구가 쫓아와서 침입자를 해치웁니다. 문제는 꽃가루처럼 몸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온 게 아닌데도 히스타민이 분비될 경우입니다. 이럴 때 히스타민을 억제하는 항히스타민제를 쓰게 됩니다.

2023년부터 지오영이 공급하는 약국용 지르텍 10정(지오영 제공)

우리가 약국에서 흔히 구입하는 지르텍이 대표적인 의약품입니다. 항히스타민제는 개발 시기와 효능에 따라 1·2·3세대로 구분됩니다. 1940년대 개발된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트리프롤리딘(삼일제약), 페니라민(유한양행) 메퀴타진(대웅제약 등)의 성분이 있습니다. 분자 크기가 작고 지용성이라 혈액뇌장벽(BBB)을 통과해 뇌의 히스타민 분비를 억제합니다.

중추신경계에 바로 작용하다보니 복용 후 30분~1시간 사이 빠르게 효과가 나타납니다. 다만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이 4시간 정도로 짧고, 약을 먹으면 쉽게 졸립니다. 졸음 부작용이 커서 요즘에는 코감기약이나 수면유도제로 주로 쓰입니다. 다만 메퀴타진은 덜 졸린 것으로 나옵니다.

1980년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한 2세대 항히스타민제가 나옵니다. 세티리진(지르텍, UBC제약)이 주성분인 지르텍과 씨잘입니다. 분자의 크기를 키워서 혈액뇌장벽을 넘어 뇌로 유입되지 않게 한 것이 특징입니다. 복용 후 15~30분이면 효과가 나타나지만, 피로감은 훨씬 덜하면서도, 약효가 8시간 가량 지속되는 것이 장점입니다.

클라리틴/바이엘코리아 제공

지르텍과 씨잘 두 약 모두 세티리진 성분 의약품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씨잘은 세티리진 성분 중에서도 특정 성분(R-거울상 이성질체 세티리진)만 분리했습니다. 이 성분은 전문의약품이라 병원 처방을 받아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씨잘과 지르텍은 작년까지 유한양행이 수입해 유통했는데, 올해부터는 병원용 전문의약품은 제일약품,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은 지오영이 유통합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팔리기 시작했고, 2013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지정됐습니다. 특허가 만료돼 복제약들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1세대 약과 비교하면 졸음이 덜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드물게 우울감 자살충동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다른 2세대 항히스타민제로 로라타딘(클라리틴)이 있습니다. 독일 바이엘이 개발하고 바이엘코리아가 유통합니다. 세티리진보다 덜 졸리지만, 복용 후 효과가 1~2시간 후부터 천천히 나타나서 ‘약효가 덜하다’는 오해도 받습니다. 다만 졸음 없는 일상생활을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르텍이 ‘효과 빠른’을 강점으로 내세운다면, 클라리틴은 ‘졸음 부담이 적다’ 홍보합니다. 클라리틴 역시 2013년부터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당을 함유하고 있어서 우유를 먹고 속이 불편하거나 설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 약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알레그라정 /한독 제공

항간에 항히스타민제는 오렌지, 자몽주스와 함께 복용하면 안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3세대 의약품에 해당합니다. 펙소페나딘(알레그라. 사노피)이라는 성분인데, 이 성분은 1~2세대와 다르게 장 벽에 있는 OATP(유기음이온운반체)를 통해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과일주스에 있는 유기산 성분들도 이 방식으로 장 속에 흡수되는데, 약과 함께 먹으면 서로 흡수를 경쟁하다보니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하게 됩니다.

경희대의료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손경희 교수는 “자몽주스는 항히스타민제 뿐만 아니라, 고혈압약이나 고지혈증 약과도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약을 먹을 때는 동시 복용을 피할 것을 권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손 교수는 “자몽주스나 오렌지주스를 먹으면, 구연산이 간에서 분비돼 약 대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할 때 졸음, 어지러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펙소페나딘은 1~2세대와 비교하면 효과는 그대로면서, 졸음이 훨씬 덜 들고, 간에 부담을 줄였습니다. 그래서 알레그라는 ‘효과는 빠르고 졸음을 줄였다’고 광고합니다. 알레그라는 120㎎ 용량에 한해 작년 3월 일반의약품으로도 허가를 받아 약국에서도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습니다.

경희대의료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손경희 교수/경희대의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