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지수가 연일 상승하고 있음에도, 바이오 관련주들은 '큰손' 외국인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요즘 바이오벤처들 전환사채(CB) 때문에 다들 고생하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돈 돌려달라고 아우성이에요.”(국내 바이오 벤처 대표)

국내 바이오 벤처들이 1~2년 전 발행한 전환사채에 대한 조기 상환 기간이 도래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2년 새 주가가 폭락하면서 조기 상환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바이오 벤처 업계에서 한때 ‘마이너스 통장’으로 통하던 전환사채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전환사채 조기 상환 기간이 돌아오는 국내 바이오 벤처들이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서 잇달아 부정적 결과를 받았다.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셀리버리(268600)는 최근 대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고 거래가 정지됐다.

대주회계법인은 감사의견 거절 이유로 셀리버리의 총자산은 42억원인데, 올 10월에 3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풋옵션 시간이 도래한다고 지적했다. 풋옵션은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지분을 팔 권한이다.

사람 몸에 이식할 수 있는 이종(異種) 장기를 개발하는 제넨바이오(072520)도 이번 감사보고서에서 ‘한정’ 의견을 받았다.

제넨바이오가 보유한 전환사채는 167억원에 이른다. 삼일회계법인은 “유동자산 대비 유동부채가 247억원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 회사는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던 투자자들이 장내에서 주식을 대거 매도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메리츠증권은 올 들어서만 제넨바이오 주식 181만6000주를 처분했다.

전환 사채는 채권의 일종이다.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 차익을 얻거나, 주가가 하락하면 만기까지 갖고 있다가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다. 여기에 발행 1~2년 이후에 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옵션 계약을 한다.

전환사채의 만기는 내년까지 여유가 있지만 문제는 바로 옵션 계약이다. 투자자는 주가가 원하는 만큼 상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면 만기 전이라도, 풋옵션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지난 2021년만 해도 바이오는 유망 종목으로 통했다. 이 시기를 틈타 바이오벤처들은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문제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풋옵션이 도래한다는 점이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주가는 대부분 2년 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주가가 역대 최저가까지 떨어진 바이오벤처가 적지 않다. 전환사채 투자자 입장에선 주식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신약 개발은 임상시험에 지속적으로 현금이 필요한데, 추가 자금조달은 고사하고 현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금이 그나마 있는 업체들은 자비를 들여 전환사채를 취득했다. 지난달 코아스템켐온, 전진바이오팜, 셀리드, 지티지웰니스, 우정바이오, 휴메딕스 등이 만기 전 전환사채를 취득했다.

바이오벤처 업계에서는 정관 개정을 통해 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곳이 속출했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288330)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한도를 정률에서 정액으로 바꾸는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이전까지 이 회사의 사채 발행 한도는 시가 총액의 30% 이하였는데, 이를 1500억원 이하로 바꿨다.

브릿지바이오의 시가총액은 1783억원으로, 기존 정관대로였다면 발행 한도는 534억원이다. 정관 변경으로 발행 한도가 세 배로 늘어났다. 셀리버리는사채 발행 한도를 1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10배, 아이진(300억원→2000억원), 엘앤씨바이오(400억원→1000억원)는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사채 발행 한도를 늘린 것은 주가 하락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의 50%가 넘는 손실이 발생하면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반면 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하면 자본이 된다. 사채 발행 한도를 높이면 손실 비율을 떨어지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