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도착한 동대구역에서 다시 차를 타고 20분가량 더 달리자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케이메디허브)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부터 여러 의료기기 업체들이 도로 양옆으로 입주해 있다. 10분 정도 더 따라가다 보면 대구를 대표하는 팔공산이 품은 말끔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케이메디허브는 국내 의료산업 성장을 돕기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충북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와 함께 2009년 지정된 이후 102만7000㎡에 달하는 면적에 차곡차곡 건물을 쌓았다. 신약 개발을 담당하는 '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동물실험을 지원하는 '전임상센터', 의약품 생산을 지원하는 '의약품생산센터'와 같은 연구개발(R&D) 핵심 센터를 비롯해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본부'까지 운영하고 있다.
각 센터는 물심양면 신약, 의료기기 개발을 지원한다. R&D 핵심 센터는 191종, 약 3250대에 이르는 최점단 장비를 운용하고 있다. 모두 최신 장비다. 화학부터 공학, 수의학, 약학까지 분야별 약 450명의 든든한 전문가도 함께 한다. 제품 설계부터 실험은 물론, 생산까지 가능하며 원한다면 논문과 같은 과제도 도전할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제품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통상 국가기관은 이론적 연구에만 집중하지만, 케이메디허브는 R&D 역량을 결집해 실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16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시작으로, 뇌암, 간암, 치매, 알츠하이머, 뇌종양에 이어 올해 정신질환 치료물질 등 꾸준한 기술이전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해외 48개국에 출원한 지식재산권만 약 650개에 달한다.
국내 31호 신약인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도 케이메디허브에서 시작됐다. 2014년 벤처기업 제노스코에 분자설계를 무상지원해 '레이저티닙(렉라자 성분명)'을 발굴했다. 이는 향후 유한양행에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기술수출 금액을 안긴 국내 대표 물질로 자리매김했다.
양진영 케이메디허브 이사장은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싶은 국내 산학연병, 의사과학자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며 "목표는 국내서 화이자, 지멘스와 같은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이라는 '꼬리표'만 떼면 대구 지역은 서울을 제외한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의료 인프라를 갖췄다. 5개 의대와 4개의 약대, 2개의 한의대를 품고 있다. 대구 지역 내에는 12개 종합병원을 비롯해 약 3500개 병의원이 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도 서울을 제외하면 가장 많다. 대구가 의료기기 지원 도시로 일찌감치 낙점된 배경이다.
이들 병의원들은 신약, 의료기기 개발에 든든한 '지원군'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허가 문턱을 넘더라도 실제 활용하겠다는 병원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대구 지역 병원들은 케이메디허브 개발 제품을 가장 먼저 사용해 검증한다.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인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처를 코앞에 둔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와 비교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양 이사장이 신약, 의료기기 메카로서 대구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전이 고향으로, 식약처 차장까지 역임했던 그는 지난 2021년 연고도 없는 대구행을 결심했다. 양 이사장은 "식약처에서 오래 근무했고 근방에 있다 보니 오송첨복재단이 익숙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케이메디허브가 기업의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양 이사장은 국내 대표 규제기관 중 하나인 식약처에서 산업진흥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업무 탓에 기업을 만나는 데 경계했다던 그는 이제 의료산업 진흥을 위한 '영업사원'을 자처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기업, 의사, 교수는 물론, 직원들과 소통으로 연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양 이사장을 대구에서 직접 만나 케이메디허브 운영 계획 전반에 걸쳐 물어봤다. 다음은 양 이사장과 일문일답.
−케이메디허브는 어떤 기관인가.
"국내 의료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항암제 등을 국산화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신약개발지원센터', 수술로봇·진단기기 등을 개발하는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동물실험을 지원하는 '전임상센터', 국내 최대규모 공공기관 GMP(의약품 제조와 품질관리 기준) 인증시설을 갖추고 의약품 생산이 가능한 '의약생산센터', 이들을 지원하는 '전략기획본부'로 구성한다. 기존 국가기관과 다른 점은 이론적 연구에 집중하는 연구소가 아니라 실제 제품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 또 연구개발을 위해 필요한 전임상과 임상용 의약품 생산, 임상시험까지 한곳에서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감염병 치료제부터 항암제는 물론, 내시경 처치구 같은 일회용 수술 도구,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장비까지 대부분의 약과 의료기기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까지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글로벌 신약과 의료기기가 국내에서 개발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국내 첨단의료산업 단지는 대구와 오송 두 곳이다. 대구만의 강점은.
"대구는 합성신약과 정보기술(IT) 의료기기, 오송은 바이오신약과 바이오기술(BT) 의료기기를 연구한다. 대구는 5개 의대와 2개의 한의대, 4개의 약대를 갖추고 있다. 12개 종합병원과 병의원만 약 3500개에 달한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도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많다. 케이메디허브는 이러한 지역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대구에는 의사 모임이 조직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케이메디허브에서 연구개발한 제품을 사용해 검증해준다. 의료기기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개발이나 인허가도 중요하지만, 병원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서울에서 거리는 있지만,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생각한다면 대구는 장점이 많다. 오송의 장점은 식약처가 바로 옆에 있어서 연구개발한 제품의 인허가까지 빠르게 연계된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대구식약청이 케이메디허브 바로 옆에 있다. 또 식약처와 인사교류로 식약처 파견직원이 재단에 상주하며 인허가 상담도 지원하고 있다."
−식약처 파견직원의 업무는.
"식약처 공무원과 우리 재단 직원 각 1명을 서로 기관에 상주한다. 식약처 과장급 직원이 재단에서 의료기기 현장 심사 허가를 직접 맡고 있다. 불과 1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 직원도 식약처에 가서 허가 업무를 배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5년 정도 허가 업무를 직접 경험하면 향후 재단으로 돌아와 인허가 업무 지원을 거의 다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이 기업 고충을 상담하다 막힐 경우 식약처 공무원까지 가세해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인력과 연구개발 성과 현황은.
"직원 규모는 450명이다. 오송보다 약 50명 많다. 바이오산업의 활발한 이직 분위기 속에서도 양호한 이직률을 보이고 있다. 화학, 의공학, 전자, 약학, 수의학 여러 전문가가 본인 업무를 하며 개인 역량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지난 2016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시작으로, 뇌암(2017년), 간암(2018년), 치매(2021년), 알츠하이머(2021년), 인공지능(AI) 생체신호 실시간 측정·전송 장치(2022년), 뇌종양(2022년) 난소암(2022년)을 비롯해 올해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등 정신질환 치료 물질까지 꾸준히 기술이전 성과를 내고 있다. 기술이전 건수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수입도 크게 늘렸다. 지난해 기준 기술 이전 수입은 전년보다 9배 증가했다."
−대전이 고향이다. 식약처에서도 근무했는데 오송이 더 익숙하지 않은가. 대구행을 결심한 계기는.
"고향은 대전이고, 가족들이 서울에 있다. 식약처에 오래 근무했고 바로 옆에 오송첨복재단이 있다 보니 (오송이) 더 익숙하긴 했다. 대구행을 결심한 것은 대구가 가진 이미지 때문이다. 대구는 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창기 식약처와 최전방에서 싸운 동지 아닌가. 사실 이전까지 대구에 대해 별 지식이 없었다. 코로나 사태 때 처음 겪는 사태임에도 마스크 착용에 적극 협조하고 외출 자제도 반발 없이 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며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 시민들이 먼저 턱에 마스크를 걸친 사람에게 주의를 주는 걸 보고 놀랐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두 번 다시 우리 정부가 개인 기업에 약을 달라고 사정하는 일이 없길 바랐다. 우리가 힘을 키우려면 제네릭(복제약)이나 전통적 의료용품뿐만 아니라 글로벌 신약과 혁신의료기기를 만들어야 한다. 케이메디허브가 의료 연구개발(R&D)을 지원해 기업의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식약처에 오래 몸담았다. 규제기관에서 진흥기관으로 옮기면서 변화가 많았을 것 같다.
"규제기관에서는 최선을 다해 기준에 따라 규제했고, 의료산업진흥재단에서는 최선을 다해 의료산업을 진흥하려 노력하고 있다. 방법이 다를 뿐 목표는 하나다. 다만 태도는 바뀌었다. 식약처 근무 당시에는 기업을 만나면 친분이 생길까 봐 조심스러워 경계했다. 지금은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한 곳이라도 더 만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식약처에서 근무하며 쌓은 노하우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내부 구성원과 끊임없이 공유한다. 직원은 물론, 기업가, 의사, 교수 등 다양한 사람과 많이 만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얘기를 듣고 있다."
−과거 코로나19 백신 확보에도 관여했다고 들었다. 어떤 심경이었나.
"대구행을 결심한 계기였기도 하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당시 상황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분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국민들은 정부만 바라보는데 화이자는 연락도 안 받기 일쑤였다. 21세기에 질병 하나로 세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속상했고, 왜 우리나라에는 화이자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더 속상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또 올 수 있고, 대비는 1~2년 만에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배웠다. 추후 화이자가 한국을 찾아와 약이나 의료기기를 보내달라고 사정하며 찾아오게 하는 게 꿈이다. 나를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뉴스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케이메디허브도 역할을 다할 것이다."
−2021년 이사장 취임 후 역점에 둔 사업은. 현재까지 성과와 개선점은.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낮은 재단 인지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서울·경기권 기업은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 대구지역에 국한된 지원기관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단 기업이미지(CI)도 '케이메디허브'로 변경했다. 직원들 설문 조사도 진행했고,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줬다. 이후 우리 재단이 하는 일을 알리는 데 주력했고, 재단시설도 정비했다. 대구까지 찾아갔더니 초라했다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수도권에 몰려있는 제약·의료기기업이 찾아오기 불편할까 봐 서울 홍릉에도 사무소를 내고 쉽게 찾아오도록 했다. 사람들이 점차 우리를 알아주고, 대구가 지원을 잘해준다며 찾아올 때 보람을 느낀다. 성과는 연구 확대, 직원 소통, 기업 지원, 홍보 강화를 통한 이미지 쇄신 등에서 다양한 성과를 냈다. 지난해 R&D 비용은 전년과 비교해 12% 증가해 400억원을 넘었고, 기술 서비스 수수료도 2021년 70억원에서 2022년 100억원을 기록했다. 개선할 점은 지역적 불리함을 극복할 만큼의 확실한 인지도를 더 쌓아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케이메디허브를 알려 나가겠다."
−재단 내 입주 기업 현황과 대표 기업을 꼽는다면.
"현재 연구기관 17개, 기업 83개가 입주해 있다. 한국뇌연구원, 실험동물자원은행, 3D융합기술지원센터 등도 입주해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 대표기업으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멸균제 제조기업 '플라즈맵', 방사능 측정기 개발 업체 '제이에스테크윈', 자폐스펙트럼 장애 치료제 개발 기업 '아스트로젠', 내시경 처치구류 개발 기업 '인코아', 호흡 진단·치료시스템 개발 기업 '인트인' 등이 있다."
−기업들이 재단에 입주하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나.
"입주기업에는 세제지원이 따른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3년간 100% 감면되며, 취득세도 면제된다. 용지매입 대금도 3년간은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 입주 후 고용상태에 따라 교육훈련 보조금도 지급한다. 첨복특별법에 따라 단지 내 연구개발의 특허출원에 대해서는 우선심사도 제공한다. 무엇보다 R&D 지원이 풍부하다. 케이메디허브의 450명 연구진이 입주기업을 지원하며, 관련 기금도 있다. 입주기업과 연구원을 1대 1로 매칭해 애로사항도 전담 관리한다."
−해외 판로 개척에는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해외박람회에 공동관을 운영하며 함께 참여해 수출을 지원한다. 지난해부터는 국제박람회인 메디카(MEDICA·독일 의료기기전시회)와 아랍헬스(두바이 국제의료전시회)에 국내 기업과 공동관을 운영해 유럽과 중동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 메디카에서 932만달러(약 120억원) 규모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아랍헬스에서는 대구테크노파크와 공동관을 운영했는데 총 14개 기업이 박람회 4일 기간 2379만달러(약 307억원)의 수출계약을 기록했다. 해외 각국 보건복지부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케이메디허브가 보증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소개하며 판로개척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도미니카공화국 복지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10월 방문한 영국 방문단은 디지털헬스 관련 의료기술 개발을 위해 우리나라와 협력하길 희망했다. 에티오피아, 태국 정부와도 협업을 논의 중이며, 케이메디허브의 기술력을 믿고 협업한 제품을 소개받길 원했다. 국내 제품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해당 국가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양국이 서로의 인허가를 공동 인정해주기로 한 국가는 예외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케이메디허브가 인허가와 임상시험을 지원한다. 유럽과 미국 GMP 수준을 만족하는 생산라인을 갖추고 임상계획승인(IND) 자료까지 지원해주기 때문에 함께 한다면 빠르게 해외임상이 가능하다."
−작은 기업일수록 인허가 고민이 클 것 같다.
"의료기기의 개발 초기 단계부터 인허가 전문가들이 직접 상담하고 조언해주기 때문에 연구개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해준다. 물론 개발이 끝난 기업의 경우 인허가 부분만 상담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자제품이라면 디자인만 변경하거나 기존 제품의 유사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다. 의료기기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일 제품이기 때문에 정말로 안전한지, 급격한 온도 변화에도 동일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일정 크기의 진동이나 압력을 잘 견뎌 비행기나 트럭으로도 이동이 가능한지까지 꼼꼼히 확인받아야 한다. 상당수 기업이 제품을 만든 뒤 인허가를 신청하려고 하는데 간혹 문제가 생기면 모든 과정을 뒤엎고 처음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의료기기 제품은 전자파적합성 평가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수술 중 다른 의료기기와 전자파 교란을 일으켜 다른 기기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면 연구개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디지털 의료기기 같은 경우 새로운 분야다. 규제 자체가 없어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기업들 애로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를 어떻게 내줄 것인지는 가장 어려운 부문이다. 증명할 방법이 없다. 식약처에서도 고민을 하며 세계 동향을 파악했는데, 의외로 미국 FDA도 잘 못한다. 효과성과 실증을 어떻게 할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식약처에서도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연구해보자고 해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지원만 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세계로 치고 나갈 수 있다."
−인허가 외에는 어떤 부문을 지원하나.
"신약은 통상 하나를 개발하는데 10년의 시간, 10조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성공 확률은 100만분의 일로 꼽는다. 이렇게 긴 시간과 돈이 드는 것은 임상시험 때문이다. 동물실험으로 일컫는 전임상에서도 유럽과 미국이 인정한 동물로 실험한 결과에 대해서만 성능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실험동물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는 약과다. 임상시험에 들어가면 환자가 먹는 약도 개발자(기업)가 부담해야 하고,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의사의 비용까지 개발자 몫이다. 그래서 대부분 임상 모든 단계에서 글로벌 기업에 물질을 팔아버린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국가에서 신약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임상시험용 약을 만드는 것부터 문제다. 일반적으로 제약기업들은 GMP 인증을 받은 제약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으나 효율을 위해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한다. 임상용 약은 소량만 만들어야 제조단가가 맞는다. 일반 공장에서 만들면 대부분을 만들자마자 버려야 한다. 정부가 케이메디허브를 만들고 의약생산센터를 둔 이유가 임상시험을 위한 소량의 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제조라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케이메디허브는 1㎏ 단위부터 생산할 수 있다. 여러 지자체가 만든 기관은 경제적 지원이나 인허가 지원이 주 업무지만, 케이메디허브는 정부가 만든 공공기관으로 연구개발 지원이 주 업무다."
−직원수 450명 규모로 유지 중이다. 인력 고민은 없는가.
"정부가 연구원과 장비를 모두 한곳에 갖춰 두고 국내 산학연·의사과학자들이 이를 활용해 새로운 의료산업을 일으키기를 원했다. 그것이 케이메디허브다. 케이메디허브는 약 450명의 연구진, 1240억원 규모의 3000대 이상 최신장비를 갖추고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를 찾는 기업이 워낙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요청하다 보니 직원 수를 늘리고 싶고, 인건비 계산을 할 때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인력을 배치할지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인공장기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돼지를 이용한 전임상 수요가 늘고, 의약품 위탁생산 의뢰도 많다. 그래서 재단은 미래의료기술연구동과 제약스마트팩토리를 건설 중이다. 기업수요를 제때 다 해결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새로운 분야도 모두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정부가 모든 연구를 다 해줄 수는 없고 재단의 자립화도 고려해야 해서 차근차근 돕고 있다."
−인력 유지와 채용을 위한 유인책이 따로 있는지.
"케이메디허브는 자기 일을 하며 개인 역량 개발도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양한 전공과 협업하며 논문을 쓰며 과제도 도전할 수 있고, 연구한 결과를 기업에 기술이전할 수도 있다. 본인이 개발한 기술이 실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 공공기관이다 보니 정년 보장과 유연근무, 육아휴직 등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실적에 따른 보상도 크게 강화했다. 정부가 대한민국을 의료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케이메디허브를 만들었는데 연구원들이 정년 보장만 믿고 기업에 불친절해서는 기관의 존재 의미가 없다.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기업을 도운 실적을 낸 직원에게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입사경쟁률도 치열한 편이고, 재단으로서는 우수한 인력의 확보방안을 더 고민 중이다."
−정부가 1조원 이상 신약 2개를 개발하고, 의료기기 5위 국가 발돋움을 하겠다고 했다. 어떤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지.
"개인 기업이 혼자 성공하기 힘든 신약과 의료기기 연구개발을 지원하도록 국가기관을 만들어둔 만큼 확실한 의료 R&D 집중이 필요하다. 흔히 성공한 의료클러스터로 미국 보스턴을 꼽는다. 유럽이 의료시장을 독점하던 상황에서 미국이 반등한 계기가 보스턴의 성공이다. 보스턴은 대학과 병원이 있었고, 여기 의료기업들이 모이며 인력과 임상이 연계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국내서도 바이오를 육성한다고 하자 각 지역이 보스턴과 가장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2022년도 정부 보건의료 R&D 예산은 1조 5000억원이었다. 큰 예산이고, 이를 두고 전국에서 파이를 나눠 먹고 있다. 화이자의 연간 R&D 예산은 10조2000억원 수준이다. 어떤 투자는 실패하지만, 성공한 R&D가 혁신신약이 돼 다시 화이자를 먹여 살리는 구조다. 우리 정부도 R&D 예산을 더 키우면 좋겠지만, 지금의 예산이 반발을 최소화하는 나눠주기식으로 배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의료기기 인허가를 위해 온도시험이 필수라고 해서 전국에 온도시험장비를 수백대 구매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국가다. R&D에서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있어야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은 내수만 놓고 경쟁하는 것 같다. 왜 이런 구조가 고착화됐나.
"제약 연구개발은 성공하기만 하면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지만, 성공확률이 극히 낮다. 그러다 보니 안정적인 내수시장에서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업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내수시장만 두고도 성장할 수 있었다. 인구가 꾸준히 늘어났고 수명도 길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도 불안감을 느끼고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문제는 해외 진출이 쉽지가 않다. 제약기업의 경우 제네릭으로는 해외 진출이 힘들고, 의료기기의 경우 품질과 가격 모두 경쟁력을 갖추더라도 병원 확보가 쉽지 않다. 어떤 의사가 수술할 때 사용할 도구를 신제품으로 바꿔가며 환자 생명을 두고 시험하겠나. 해외로 진출할 방법은 혁신 신약이나 혁신 의료기기 등장일 수밖에 없다. 혁신제품이라 해서 꼭 엄청난 항암제나 영상장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코로나19 진단 시약이나 마스크가 입증한 것처럼 품질을 증명할 기회를 잘 만나도 가능하다."
−정부 경영평가 기관 A 등급을 받았다. 비결은.
"정부에서 국민 세금을 주는 만큼 존재 목적을 잊지 않고 운영해 나가려 노력한다. 케이메디허브 매출은 크게 연구과제, 기술서비스에 있고 기술이전으로 인한 수익도 있다. 이 부분을 키우기 위해 성과에 대한 직원 보상을 강화했다. 2010년 만들어진 후 건물을 올리고 직원을 뽑고 장비를 정비하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의료산업을 키워야 할 때다. 영업이익이 발생하면 차곡차곡 모아 재단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신약, 의료기기 개발기업을 키우고 R&D 인력을 키워야 한다. 영업이익은 2020년도 70억원에서 2021년도 40억으로 공시됐다. 2021년도에는 전년보다 인원 25명을 더 채용해 인건비가 지출됐고 노후장비 수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체연구비를 늘렸다. R&D 시드머니가 필요했다. 재단은 평균 연령이 30대일 만큼 젊은 연구원이 많다. 선배 박사들이 따오는 과제에 참여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본인의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다만 아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과제를 따올 만큼의 경력은 부족한 어린 과학자다. 이들을 육성하기 위해 재단이 연구과제를 공모해 심사한 후 연구비를 지원한다. 적은 금액으로 시작하더라도 본인 전공을 파고들 수 있다. 이들은 10년 뒤 케이메디허브와 대한민국을 이끌 전문가가 돼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도 ESG가 중요해졌다. 온실가스 감축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준배출량을 초과하고 있다. 신약개발, 임상 등으로도 폐기물도 지속 느는 구조다. 대응 계획 있나.
"공공기관으로서 사명감을 늘 염두에 두고 ESG 경영을 하고 있다. 폐기물은 법적규정에 따라 안전하게 처리한다.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늘 고심하고 있다. 신약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에서도 유럽이 인정하는 혈통 있는 마우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이미 했다. 이렇게 외화를 주고 구매하는 마우스가 전국적으로 많지만 각자 연구자가 필요한 실험 후 폐기한다. 10년 전 창립 때부터 실험 후 남은 동물의 세포, DNA, 혈액 등을 자원화해 실험동물자원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한 연구자가 자궁암을 연구 중이라면 '자궁암에 걸린 쥐의 자궁세포'만 가져가 연구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동물도 보호할 수 있고, 필수불가결한 실험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전 직원이 1% 나눔운동도 펼쳐 월급의 일부를 모아놨다가 저소득층·질환자를 지원하고 연말마다 연탄배달, 식목일 거리청소, 분기별 헌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임상시험용 의약품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희귀필수의약품 생산도 지원한다. 이미 약이 개발됐는데 환자 수가 적다고 해서 제조 단가가 안 맞아 약이 만들어지지 않고 환자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길 바란다. 무엇보다 케이메디허브의 업무 자체가 인류를 생각하는 일이라 자부한다. 우리가 연구하는 신약과 의료기기가 생명을 지키고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라 믿고 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으신 부문은.
"케이메디허브는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싶은 국내 산학연병·의사과학자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대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해외와도 오픈이노베이션이 이뤄지는 시점에 거리로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료제품 개발을 위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고가의 장비를 구매해도 좋지만, 정부가 마련해둔 케이메디허브를 이용한다면 R&D 비용이 훨씬 줄 것이다. 공동연구 과정의 정보보안은 확실하며, 목표는 오로지 대한민국에서도 화이자와 지멘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정부도 1조5000억원의 보건의료 R&D 예산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고민해주시길 바란다. 기업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기관은 많다. 하지만 이런 지원으로 기업규모는 조금 더 키울지 모르지만 혁신신약이나 혁신의료기기 개발은 불가능하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방법은 R&D를 도와 기업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자원이 인력이기 때문에 AI와 디지털헬스가 부상하는 지금 의료 혁신은 불가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