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연세곰돌이소아청소년과의원을 찾은 보호자와 유아. /조선DB

보건복지부가 22일 늦은 밤과 휴일에도 어린이 환자를 돌보는 '달빛어린이병원'을 내년까지 100곳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소아어린이 환자의 진료 공백을 메꾸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시행후 10년간 전국 17개 시도에 34곳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의료계에선 얼마나 많은 병원을 동참할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에서 운영 중인 달빛어린이병원 4곳 중 2곳만, 그것도 평일 오후 11시까지 야간진료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건복지부는 표준운영시간을 평일 18~24시로 정했지만 최소 운영시간만 운영한다는 이야기다.

현장에서는 그동안 정부가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에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지적과 함께 실패한 정책을 재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달빛어린이병원 홈페이지. /달빛어린이병원 홈페이지 캡쳐

◇10년 동안 34곳 달빛어린이병원, 내년까지 100곳 늘린다

지난 2014년 도입된 달빛어린이병원은 늦은 밤이나 주말 늦은 시간까지 진료하는 게 특징이다. 응급실까지 갈 필요 없는 소아 경증 환자를 치료해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했다. 응급실보다 비용 부담이 적고 대기시간도 길지 않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정부는 소아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 밤새 돌아다니거나 제때 진료를 놓치지 않도록 현재 전국 34곳에 머무는 달빛어린이병원을 단기적으로 100개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22일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지원하기 위한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확대 시점과 계획에 대해 "내년까지 100개 이상을 목표로 하며 더 많은 병원이 동참하면 200개 이상도이 될 수 있다"며 "병원 쪽에 적극적으로 유화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설립한 달빛어린이병원보다 숫자가 3배 가까이 많은 100개 병원의 확충에 나선 것은 소아진료 공백을 줄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부는 달빛어린이병원 수가 개선과 야간, 휴일 진료 운영비 일부 지원을 통해 병원 확대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 전문병원. /뉴스1

◇서울 절반 "평일 야간 진료 안 해요"…"실패한 정책 재탕"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중인 달빛어린이병원은 총 4곳으로 집계된다. 이 중 평일 오후 11시까지 야간진료를 하는 곳은 2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 "주말 진료만 하고 평일 야간 진료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의료계는 야간 진료를 보면 사실상 손해 보는 장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발표야말로 정부가 그동안 달빛어린이병원 제도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함께 실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 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애초 2015년까지 달빛어린이병원을 30곳까지 늘릴 계획이었지만, 2018년 20곳을 달성하는 데 그쳤었다. 병원 확대 과정에서 개인의원 운영 위축 우려로 의료계 내 갈등을 빚으며 뒷걸음질하기도 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일정 규모 이상의 중대형 병원급 의료기관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며 반발했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 밤 11~12시, 휴일에는 최소 오후 6시까지 진료해야 한다. 연간 최대 3일인 휴진 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1년 내내 환자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개인병원은 엄두도 낼 수 있는 셈이다.

서울에서 달빛어린이병원 운영하는 송종근 연세곰돌이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은 "현재 수가와 지원금으로는 인건비도 안 나와 하던 사람들도 그만해야 할 처지"라며 "물가는 해마다 오르는데 6년째 수가가 오르지 않아 사실상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달빛어린이병원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며 "복지부가 대통령 보고용 정책으로 다시 재탕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