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 전경/네이버 캡처

지난 2일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산청의료원)의 계약직 내과 전문의 채용 공고가 화제가 됐다. 이 채용이 화제가 된 것은 3억 6000만원(세전)이라는 높은 연봉에도 지원자가 없기 때문이다. 산청의료원은 지난해 11월에 첫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어 지난해 12월 2차 공고를 냈고, 이 역시 사람을 찾지못해 이번에 3차 공고를 냈다.

산청군은 의사 채용 사이트에도 이 소식을 알렸지만, 댓글조차 없었다. 산청의료원에 내과 전문의가 공석인 것은 벌써 10개월째다. 근무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2년 경력 전문의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주 5일 근무 조건이라면,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도 있는 ‘꿀직장’인데,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의사들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16일 의사들이 찾는 커뮤니티를 보니 이 곳은 이미 의사들 사이에서는 지원하면 안되는 ‘블랙리스트 직장’으로 소문이 나 있다. 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산청의료원 채용 공고 관련 글에는 ‘의료계의 베링해 꽃게잡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부산⋅경남에 근무한다고 밝힌 한 의사는 “이 곳은 의료계의 신안염전과 같은 곳”이라며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물류기업의 상하차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의사들은 산청의료원에 지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근무 불안정성’을 꼽았다. 산청군이 운영하는 의료원에 근무하는데, 불안전성이 웬말이냐고 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내과 의사는 의료원에 근무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2년 동안 ‘업무대행’을 하는 자영업자 신분이었다. 채용공고에도 ‘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 의사’라고 적혔다.

이에 대해 한 개원의는 “의료원의 모든 책임과 관리를 내과 전문의가 오롯이 맡아야 하는 구조”라며 “다른 보건의료원에서는 사업자등록증도 함께 내라고 공고한 경우도 봤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급여 체계에서는 억대 연봉을 책정할 수 없으니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의료 사고 등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에서 의사들이 부담을 느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연봉이 3억 6000만원이라고 하지만, 세금을 제하면 많은 금액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수도권에서 병원을 하는 또 다른 개원의는 “1년 계약직에 퇴직금도 없고, 사업자로 등록해서 세금을 낸다고 하면 실수령액으로 월 1500만~1700만원 정도 받을 것 같다”라고 했다.

워라벨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산청의료원에는 하루 평균 150명의 환자가 내원하고, 이 중 절반이 내과 환자다. 노인이 많아 혈압약 인슐린 처방도 많다. 이 병원에 외과, 소아청소년과, 마취통증과, 일반의, 치과, 한방과 전문의인 의료원장이 있지만, 내과 전문 처방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 개원의는 “입원병상이 있는 병원을 내과 의사 1명으로 운영한다는데, 주 52시간이 지켜지겠냐”라고도 했다.

지난 2019년 산청보건의료원 권현옥 원장이 의료원 행정직원들로부터 고발을 당해 병원을 사직한 사건도 있었다. 직원 명의로 12만 5040원 상당의 대리처방을 해서 주민들에게 약을 지급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고 밝힌 한 의사는 “어차피 공무원들은 의료인을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라며 “의사가 원장으로 와서 일을 많이 시키니까 내쫓은 곳”이라고 말했다.

시내에서 먼 거리의 입지도 장애물이 된다. 부산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이고 대중교통도 원활하지 못하다. 관사나 주택도 제공하지 않는다. 산청군에 의원급 병원이 17개 정도 있는데, 굳이 산청의료원에서 의사를 못 구하는 것을 공론화하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는 것도 의사들의 반응이었다.

산청군은 지난해 11월 경상국립대학교병원과 의료분야 업무협약을 체결, 매주 1차례 4시간씩 당뇨·갑상선·골다공증 등 내분비질환 진료 지원을 받고 있다. 산청의료원은 공중보건의를 기다리고 있다. 공중보건의는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구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말한다.

한편, 산청군은 이날 산청의료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간호사 채용 공고를 올렸다. 기간은 올해 연말까지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2교대 야간 및 공휴일 근무 조건으로 월급은 24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