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 기온이 섭씨 1도 오를 때마다 감염병 발병률이 5% 가까이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더위는 인간의 면역 체계에 스트레스를 주고 균형을 무너뜨린다.
뜨거워지는 지구가 인간뿐 아니라 야생 동물의 면역력에도 안 좋은 영향은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야생 꼬리감는원숭이(카푸친원숭이)의 면역력이 기온이 높을 때 약해진다고 30일 발표했다. 고온 현상이 야생 포유류의 면역 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초로 입증한 사례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이날 게재됐다.
연구진은 2017년부터 코스타리카 타보가 숲 보호구역에 서식하는 야생 꼬리감는원숭이 54마리를 관찰했다. 원숭이들이 배뇨할 때 긴 막대에 달린 플라스틱 바구니를 사용해 소변을 채집하고, 소변에서 ‘네오프테린’이라는 물질을 측정해 면역 기능을 평가했다. 네오프테린은 몸이 위협을 감지했을 때 면역 반응을 활성화하는 물질이다.
기온과 네오프테린 농도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원숭이들이 약 2주 동안 30도 이상의 고온을 경험하면 네오프테린 농도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면역 기능이 크게 약해진 것이다. 포유류는 체온을 외부 환경에 맞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만큼 온도 변화에 어느 정도 적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를 뒤집는 결과다.
연구에 참여한 조던 루코어 미국 미시간대 연구원은 “30도라는 온도가 그렇게 높은 온도가 아니지만, 원숭이의 면역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다양한 기후와 환경에서 살아가는 꼬리감는원숭이와 같은 강한 종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특히 어린 원숭이일 수록 더위에 취약했다. 루코어 연구원 “개체의 경우 특정 병원체를 기억하고 대응하는 ‘적응 면역 체계’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높은 기온이 야생 포유류의 면역체계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전까지 기후변화가 면역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은 있었으나, 야생 포유류에서 면역체계와 온도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한 사례는 없었다.
연구진은 “꼬리감는원숭이를 연구한 코스타리카 지역은 1980년 이후 평균 최대 온도가 10년마다 약 0.18도씩 상승했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은 89% 늘었다”며 “기후변화가 야생 동물의 생리적 시스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숭이의 면역 기능 저하가 장기적으로 건강이나 생식적 결과에 영향을 주는지 보려면 여러 세대를 살펴보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q6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