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보류지 가격이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같이 오르고 있다. 보류지는 정비사업 조합이 착오나 소송 등을 대비해 일반분양하지 않고 남겨둔 주택을 말한다. 공개 경찰입찰 방식이어서 청약통장이 필요없고 전매제한도 없어 한때는 ‘알짜 매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반기부터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가격과 더불어 보류지 가격도 오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주변 시세에 맞먹는 금액에 매각 공고가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 앞. /뉴스1

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래미안 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은 지난달 보류지 3가구에 대해 매각공고를 냈다. 전용 59㎡는 35억원에, 전용 107㎡는 58억원에, 전용 155㎡는 80억원에 입찰에 나왔다. 인근 래미안 원베일리의 전용 59㎡가 지난달 36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시세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분양가보다는 2배나 더 올랐다. 래미안 원펜타스 59㎡의 분양가는 16억~17억원대였다. 전용 107㎡은 분양가 27억~29억원대에, 전용 155㎡는 42억원대에 공급됐다.

보류지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인기가 달라진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는 시세 대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어 인기가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시기에는 중도금과 잔금 일정이 촉박해 현금부자가 아니라면 접근이 쉽지 않다. 올해 들어서는 부동산 가격이 점차 오르기 시작하면서 보류지 가격도 함께 올랐다. 입찰가를 시세와 비슷하게 잡아도 ‘팔릴 수 있다’는 조합의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실제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도 공고가 올라오고 있다. 강동 헤리티지 자이(길동 신동아1·2차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도 보류지 매각 공고를 냈는데, 전용 59㎡ 6가구의 가격을 15억원으로 책정했다. 강동 헤리티지 자이 전용 59㎡의 최근 거래가는 12억2500만원으로, 보류지 가격이 더 높다.

최근 보류지 입찰이 취소된 서초 그랑자이 14가구에 대한 가격도 22억3000만~23억5000만원 선이었는데, 동일 평형이 지난달 25억원에 거래돼 시세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이 단지는 ‘시세차익 최소 2억원’으로 기대됐지만 조합과 상가 소유주 간 소송으로 인해 공개경쟁입찰이 취소됐다.

보류지 가격 인상은 올해 상반기부터 들썩였다. 지난 3월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은 보류지 매각 재공고에서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전용 59㎡ 잔여 6가구의 매매 기준가격을 5000만~1억5000만원씩 인상했다. 앞선 공고에서는 21억원에 올라온 가구들이 다음 공고에선 21억5000만원에서 22억5000만원까지 오른 것이다. 이 단지 보류지는 지난 6월 마지막 남은 한 가구가 25억5000만원에 팔리면서 완판됐다.

송파구 문정동 136번지 일원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문정) 역시 최근 8가구 보류지를 모두 팔았다. 전용 74㎡는 10억8600만원에 일반분양됐는데 보류지는 12억2000만원~12억5000만원 수준에 나온 바 있다.

전문가는 인근 시세를 잘 파악하고 준비가 된 상황에서 보류지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보류지는 원가 개념이 아니라 시세에 맞춰서 10% 안팎으로 저렴하게 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변 시세를 잘 파악하고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며 “특히 목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보류지 매각 공고는 나라장터 국가종합전자조달 입찰공고, 서울시 정비사업 포털인 ‘정비사업 정보몽땅’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조합원 분양이나 일반분양과 달리 추첨을 거치지 않고 마음에 드는 평형과 동, 호수를 지정해 입찰할 수 있다. 매각 방법은 일반 경매 방식과 비슷하다. 입찰보증금을 납부하고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 최종 낙찰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