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저렴한 분양가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수단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조합의 빈번한 사기·횡령과 수억원의 추가 분담금 등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주택조합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왜 ‘원수에게도 안 권한다’는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난 직장인 A씨는 지난 2017년 서울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이후로 6년의 세월을 후회하며 보냈다고 털어놨다. ‘사업예정지 토지의 80% 이상을 확보했고, 30층 이상의 신축 건물을 지을 예정’이라는 설명만 믿고 계약금 3000만원 가량을 내고 조합에 가입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조합은 2년 동안 다양한 이유를 대며 사업을 미뤘다. A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이 계약 당시 토지사용동의율이 30%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매입한 토지는 사업대상토지면적의 5%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마저도 토지담보대출로 인해 60% 이상이 경매에 넘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조합장이 수십억원대의 사기·횡령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렇게 7년 가까이 끌어오던 사업은 결국 좌초됐다. A씨는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조합 측에서 ‘돈이 없다’며 환불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현재 조합원들 중 계약금을 돌려받은 사람은 10%도 안된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시내 아파트 단지.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지역주택조합은 1980년대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 같은 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해온 무주택·전용면적 85㎡ 이하 1주택 조건을 갖춘 주민들끼리 조합을 결성하면 사업 시작이 가능했다. 조합원들이 초기 분담금을 모아 지역의 토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매입한 뒤 건물을 짓는 방식이다.

이처럼 사업 주체가 조합이기 때문에 시행사 비용 등 각종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시세 대비 가격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다. 통상 분양가가 인근 아파트 대비 10~20%가량 낮고, 조합 가입 시 주택청약통장이 필요 없어 한 때는 ‘무주택자의 희망’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현재까지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우선 사업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분양부터 입주까지 통상 3년가량 걸리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최소 4~5년 혹은 그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사업 속도가 느린 이유는 확보해야 하는 토지 소유권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설립인가 기준은 ‘토지사용권원 80% 이상, 소유권 15% 이상’이다. 이 기준을 통과해도 최종 사업계획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진행 토지 소유권의 95%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사업을 진행하는 구역의 토지소유주 중 5%만 매매를 반대해도 사업은 지연되거나 좌초된다는 뜻이다.

과도한 추가분담금도 문제다. 토지매입을 원치 않는 토지소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시세보다 비싼 금액을 제시한다면 부담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만약 시에서 방음벽 등 시설물 추가 설치를 요구할 경우처럼 건설 조건이 변경될 때도 추가분담금이 발생한다. 추가분담금을 내고 나면 결국 일반분양과 가격이 비슷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 시장 여건이 악화하면 자금난이 가중된다.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들의 초기 계약금을 모아 일정 부분 토지를 매입한 뒤, 해당 토지를 담보로 부동산담보대출(PF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PF대출 승인 기준이 강화되면서,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한 조합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일러스트=손민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합의 횡령으로 사업이 좌초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춘천지방검찰청 속초지청은 무주택세대주 170여 명을 허위 조합원으로 모집한 뒤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62억원의 분담금을 편취한 혐의를 받은 고성군 지역주택조합장 등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지난달 6일에는 유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이 입건됐다. 이에 사업은 좌초되고 계약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받을 수 밖에 없다.

계약금 환불 조항이 있어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분담금을 ‘계약금·업무대행비’로 나눠 홍보비(업무대행비)로 쓰고 환불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조합은 계약 보증서에 ‘개인적 변심, 사업 진행 회피, 임의로 조합 해산 시 환불 불가’와 같은 조항을 대놓고 끼워 넣기도 한다.

지역주택조합 관련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김진우 법무법인 차원 변호사는 “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 시 사업부지 확보 비율이 어떤지, 전액 환불을 보장하는 증서를 받을 경우 그것이 유효한 것인지 등을 정확히 확인해야 사기 등에 따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