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이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소유한 한진칼 지분 1186만6917주(17.41%)를 인수했다고 밝히면서 그 배경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반도건설이 한진칼의 지분 17.02%를 가진 상황에서 호반건설과 연대를 하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재연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조원태 회장에게 KCGI 지분의 매입 의사를 미리 전달한 데다, 호반건설도 한진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것을 우회적으로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반건설은 한진칼의 지분 17%로 사업상 어떤 이점을 얻을 수 있을까. 건설·항공업계 관계자들과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호반건설의 이번 투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기회가 올 경우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재도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 주목된다.

호반 CI

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사전 작업?

항공업계에 정통한 관계자 상당수는 호반건설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인수를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일본 등 필수 신고국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그 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는 현재 총 14개 국가 중 8개 국가에서 승인을 받았다. 필수 신고국 중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의 심사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각국 경쟁당국은 두 회사의 인수합병을 승인하면 특정 항공노선에서 독과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심사를 진행 중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미주, 중국, EU(유럽연합) 등 주요 시장 경쟁당국이 합병 불허를 결정하면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서 “주요국을 오가는 노선 사업권을 포기할 순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진그룹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조원태 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을 원하지만 불허 상황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적절한 플랜 B가 있어야 하는데, 호반건설은 이전부터 항공업 진출을 원했고 조원태 회장이나 산업은행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유화적인 제스추어를 보이며 다가오는 호반건설을 내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두 항공사의 합병을 무리하게 이끌 만큼의 여력이 한진그룹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안 될 경우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을 정리할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는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고민꺼리”라고 했다.

특히 조 회장은 한진그룹과 20년 넘게 동맹관계를 맺은 델타항공과의 지분 관계도 델타가 원하는 어느 시점엔 해소해 줘야한다. 델타항공은 경영권 분쟁이 극으로 치닫던 때 도와준 은인이지만, 언제고 경영상의 판단으로 지분 매각을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조 회장이 해결책을 마련해줘야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호반건설은 현금여력이 풍부하고 항공산업 진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진 기업이다.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을 보유했던 금호산업 인수전에도 뛰어든 바 있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 참여 당시 “건설업과 항공업이 만나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인수 의지를 보였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호반건설은 왕성한 인수합병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고, 현금도 풍부한 상황이라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 없다”고 했다.

23일 오전 한진칼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중구 한진빌딩 모습/뉴스1

② 레저사업, 해외 진출서 시너지 가능

재계 관계자들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에 성공한다고 해도 호반건설이 손해 볼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조원태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업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호반그룹은 호반호텔앤리조트에서 제천, 안면도, 덕산, 제주도에 리솜리조트를 운영하고 있고, 호반골프 계열로 서서울CC와 H1클럽, 하와이 호놀룰루에 와이켈레CC를 운영하고 있다. 항공사와 연계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문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리조트 사업이 항공과 연계가 되면 훨씬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면서 “호반 입장에서는 리조트 사업의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항공업과 연을 맺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현재로선 호반그룹은 해외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향후 레저사업 성장 전략에 해외시장 공략이 포함돼 있다면 그것도 호반건설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이다. 항공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고 지주사격인 한진칼의 2대 주주라면 대외적으로 사업하기 좋은 평판을 갖춘 셈이기 때문이다.

③ “사세 확대에도 큰 도움될 것”

그룹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최근 호반그룹은 미디어사 인수에 집중하고 있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호반그룹은 현재 서울신문·전자신문·EBN 등 대주주인 언론사 3곳의 대주주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호반그룹이 단기간에 기업 성장에 성공하면서 성장통으로 볼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언론사는 물론 항공업도 이런 잡음을 불식시키고 사세를 확대하는 측면에서 다른 산업보다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산업”이라고 했다.

재계에서 항공업은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전통적인 재벌 산업인데다 다른 기업 오너들의 부탁을 도와줄 일도 많다. 특히 그간 어깨를 견주지 못했던 기업과 동등하게 소통할 수 기반을 갖추는 효과가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항공업은 각 기업의 귀빈행사, 국가 행사 등에서 역할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산업이라 기업 외연을 넓히고 해외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물론 합병이 성사되고 한진칼의 대주주 역할에 남을 경우 조원태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로 일을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결국 경영권 분쟁 가능성보다는 다방면의 노림수를 가진 포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호반건설도 과거 반도건설의 행보와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반도건설은 단순 투자를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공시했다가 2020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자 경영참여로 공시를 변경한 바 있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단순 투자 목적의 지분 취득이라고 공시했고, 조원태 회장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경영권 분쟁과 같은 잡음을 만들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