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 아파트가 가격 상승률에서 신축 아파트를 역전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 지역의 ‘대장주’로 불리는 신축 아파트는 인근 구축의 시세 상승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역전 현상이 급등 피로감으로 신축에서 이탈한 수요가 구축으로 유입되며 일어나는 ‘갭메우기’라고 설명했다. 또한 내년에는 부동산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큰 만큼 현 시점에서 신축 아파트를 매수하는 것은 ‘상투잡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한솔5단지 주공 아파트. 지난 1994년 준공돼 28년차를 맞았다. /네이버부동산

1일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연령별 매매가격지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96%로 ‘20년 이상’ 구축 아파트의 1.29%에 비해 0.33%포인트(P) 낮았다. 지난 4월 신축 아파트값 상승률이 일년 반만에 처음으로 구축 상승률에 역전된 이후 6개월 간 이어진 추세다.

이전까지는 오래된 아파트가 새로 지은 아파트보다 강세를 나타내는 것은 재건축 기대감이 가격에 크게 반영되는 서울 정도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서울은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구축 아파트 상승률이 신축보다 높은 추세가 쭉 이어져왔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인 지난 6월부터는 20년 초과 아파트의 월간 매매가격 상승률이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축 아파트가 최근 약세를 보이는 원인으로 급등 피로감과 구매력 축소를 지목한다. 공급이 적고 선호도는 높은 신축 아파트가 그간 ‘자고 나면 억대로 오르는’ 일이 지속되며 일반 수요자에게 접근 불가능한 가격대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가계대출 규제로 수요자의 구매력이 더욱 축소되는 상황도 구축으로 매수 행렬이 이어지는 요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한해 전국의 5년 이하 아파트값은 11.8% 상승했다. 20년 초과 아파트값이 6.2% 상승하는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리모델링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 기대감이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된 점도 구축 아파트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신·구축 아파트값 상승률 차이를 보면, ▲수도권 0.46%P ▲지방 광역시 0.30%P ▲기타 지방(8개도) 0.07%P 등 순이었다.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양호한 지역일수록 구축 강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는 1기 신도시 최초로 리모델링 사업 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수도권에서 ‘리모델링 붐’이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가 올해초 진행한 ‘공동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단지’ 선정 공모에 무려 111개 단지가 참여한 것도 이러한 열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경기도는 당초 시범단지 2곳을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수요가 예상을 초과하자 지난 5월 시범단지 6곳을 추가로 선정하기로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특히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 열풍이 불고 있다”면서 “기존에는 재건축이 불가능했던 구축 아파트도 리모델링으로 인한 주거개선 기대감이 가격에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신축 아파트 가격은 조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축 아파트 가격이 너무 높은 수준에 고착되면서 구축 아파트로 수요가 이탈하는 사이클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수요가 거의 소진된 신축 아파트는 당분간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지금 신축을 매수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