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전력화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는 2032년까지 80대를 전력화하고 무장 능력을 높이려면 매년 수조원의 방위력 개선비가 투입돼야 하는데, 예산은 한정돼 있고 진행해야 할 다른 사업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9일 군과 방위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최근 국방부, 합동참모본부(합참), 공군 등과 KF-21 전력화 일정 조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KF-21 블록Ⅰ 사업 물량인 40대의 전력화 완료 시점을 2029년으로 1년 늦추고, GPS 유도 폭탄(KGGB)과 국산 공대지 미사일이 추가된 블록Ⅱ 사업도 연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당초 KF-21 블록Ⅱ를 2032년까지 80대 양산해 전력화를 끝내기로 계획했지만, 일정이 조정될 경우 완료 시점은 2034년 또는 2036년으로 변경될 것으로 전망된다.
군이 계획 변경을 고민하는 것은 부족한 예산 때문이다. KF-21 블록Ⅰ 사업의 전투기 40대 양산에는 총 4조3500억원이 필요하다. 올해 9월 전력화 될 양산 1호기부터 1차 물량 20대의 금액은 1조9600억원이다. 당초 2028년까지 양산될 2차 물량 20대의 금액은 2조39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올해 방위력 개선비 19조원 중 KF-21에 배정된 예산은 1조4181억원에 그쳤다.
내년에는 블록Ⅰ 양산과 함께 블록Ⅱ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KF-21에만 3조원 상당의 예산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에는 양산 물량이 늘어 필요한 예산의 규모가 더 커진다.
반면 방위력 개선비의 규모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때문에 KF-21에 예정대로 예산을 투입할 경우 군의 다른 사업들이 추진되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꼽힌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당장 내년부터 원자력 추진 잠수함 관련 예산이 편성될 전망이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건조비만 척당 2조~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개발비와 유지·보수 비용까지 고려하면 10조원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도 도입이 시급한 사업이다.
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진행돼온 군의 무기 체계 사업 중에서 1년에 2조원 이상이 투입했던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며 "다른 신규 사업이 막힐 우려가 큰 만큼 KF-21 전력화는 일정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공군은 KF-21의 전력화가 예정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KF-21은 공군의 전투기 F-4와 F-5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1977~1986년에 도입된 F-4와 F-5는 공군의 대표적인 노후 기종이다. 이들 전투기가 당장 퇴역시킬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한 만큼 KF-21 전력화가 시급하다는 게 공군의 입장이다.
KF-21 전력화가 늦어질 경우 연관된 국내 항공·방산 기업들도 생산 일정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KF-21 1대를 만드는 데는 부품 30만개가 들어가며, 이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 수는 300여 곳에 이른다.
방사청 관계자는 "내년도 방위력 개선비를 포함한 예산요구서의 제출 시한이 이달 말이라 아직 시간이 있다"며 "공군과 충분히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