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배우자 공제한도를 높이는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법 개정을 지시했지만 기획재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막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30일 전체회의를 열고 세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다만 처리할 안건에서 관심을 모았던 상속증여세(상증세) 개편 방안은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조세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기획재정부와 민주당 모두 이번 회기에는 상증세법 개정안을 논의하지 말고 장기 과제로 하자는 입장을 밝혔다"며 "이 대통령의 이야기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논의하지 않고 양쪽이 둘 다 반대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박 의원이 언급한 이 대통령의 상증세 언급은 지난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때의 일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상증세 개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반적 상속세 낮추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며 "다만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행 상속세 공제 한도는 일괄 공제 5억원에 배우자 공제 최소 5억원을 더해서 10억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일괄 공제 8억원, 배우자 공제 최소 10억원으로 총 18억원으로 상향하는 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어느날 집주인이 사망하고 배우자와 자식이 남았는데 집값이 10억원을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며 "돈이 없으면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데 너무 잔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죽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세금을 내야한다고 내쫓기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며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 금액을 올려서 18억원까지는 세금을 없게 해주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김용범 정책실장에게 "이번에 처리하자"고 했고, 김 실장도 "정책위와 상의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조세소위에는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여러 상속세 공제한도 개편안이 올라왔다. 김은혜 의원안은 기초공제 금액을 현행 2억원에서 5억원으로, 일괄공제 금액을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각각 높이는 방안을 담고 있다. 안도걸 의원안은 배우자공제 최소한도와 일괄공제 금액을 각각 7억5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이다. 이외에도 권성동, 박성준, 이종욱, 정일영 의원이 상속공제 금액을 높이는 법안을 냈다.
이와 별개로 자녀가 10년 이상 부모와 1가구 1주택으로 함께 거주할 경우 최대 6억원을 공제해주는 동거주택 상속공제를 최대 9억원으로 높이거나 동거 기간 요건을 8년으로 완화하는 법안도 있었다.
세법 개정안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상증세 개편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정작 논의가 시작되자 정부·여당이 모두 발을 뺀 것으로 전해진다. 기재부는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컸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공제한도 개편에 따르면 5년간 세수 감소분이 최대 9조5435억원(이종욱 의원안)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욱 의원안은 자녀공제 금액을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미성년자·장애인공제 금액을 현행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각각 상향하는 안이다.
김은혜 의원안도 5년간 세수 감소분이 6조683억원에 달했고, 안도걸 의원안도 2조5704억원에 달했다.
박수영 의원은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서 기재부가 세수 감소가 너무 크다고 반대했다"며 "부부 공제, 기초 공제 같은 걸 올리는 여야 의원들 안이 있었는데, 기재부가 세수 감소분을 다 합하면 20조~30조원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걸 감수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부자 감세에 대한 비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이 말한 억울한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상속세 대부분이 부유한 일부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기준으로 전체 피상속인 중 상속세가 부과된 비율은 5.9%에 불과하다.
민주당에선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을 제외하면 부자 감세로 지적받을 만한 내용은 넣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관계자는 "상증세 개편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추후 종합부동산세 개편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하자는 것"이라며 "당장은 세수 기반 확충이 필요한 만큼 장기적으로 검토하는 과제로 남겨두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