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수사 협조 불응과 ‘메시지 정치’에 국민의힘이 침묵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쇄신과 국민 신뢰 회복을 우선 과제로 내건 ‘권영세 비대위’가 출범 초반부터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이후 첫 공개회의에서 “국민이 우리 국민의힘이 우리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고 믿어줄 수 있도록 우리 당을 화합하고 쇄신해 나가겠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체제 전환과 함께 쇄신, 개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념과 진영을 넘어 당 지지율을 세대별로 확장하고, 중도층까지 껴안을 수 있도록 정책을 실행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관건은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2·3 비상계엄 사태는 위헌적이라면서도,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기 전까지는 윤 대통령 탈당이나 제명 조치 등은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야당의 탄핵 공세가 거센 가운데 대통령과의 선 긋기에 나설 경우 여당 지위를 잃고 정국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통 지지층의 ‘탄핵 반대’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는 기류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원내 2당이 되면 당정 협의가 안 되고 당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방향을 못 잡게 된다. 여당 지위에서 방향을 잡고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며 “(탄핵 결정 이후에야) 당에서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은 비상계엄 사태 관련 윤 대통령의 수사 협조 불응에 대해서도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수사나 재판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은 아니”라고 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영장 집행에 협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1일) ‘탄핵 반대집회’에 참여한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전한 데 대해서도 당은 말을 아꼈다. 신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당의 공식적 입장을 낼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편지에 대한 해석은 받아보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고 했다. 권 위원장은 ‘대통령 메시지를 어떻게 봤나’ ‘대통령에 대한 제명과 출당은 윤리위에서 논의되고 있나’라는 질의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집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 체제 수호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라며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당 안팎에선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이 ‘탄핵 반대’ 지지자들을 향해 메시지 정치를 이어가고 여당이 이에 끌려가다 보면 ‘극우 정당’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국정 안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느라 대통령과 명확히 선긋기를 하지 않으면 쇄신 동력까지 잃는 딜레마에 갇히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오전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서 윤 대통령의 편지를 언급하며 “완전히 태극기 시위대들 보고 ‘체포영장 발부 막아 달라’라고 선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제발 지금이라도 당은 대통령하고 확실하게 절연을 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죄를 드리고, 새로운 보수의 길을 찾아가면서 보수를 재건을 해야 된다”라고 했다.
한 초선 의원도 조선비즈에 “(편지로) 대통령이 저렇게 나오는 건 당이 운신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라며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수사 불응 등 정치적 현안에 대해 “(당 지도부도) 곤란할 것”이라며 “여론이 악화할 경우 당정관계 재설정을 당 지도부가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