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입법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19일 열었다. 이재명 대표가 좌장으로 참석한 이 토론회에는 재계와 개인투자자 측이 모두 참여했다. 하지만 재계와 개인투자자가 기존 입장을 반복해 주장하는 수준에 그쳐 공개토론회의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이 대표도 재계가 공개토론회에서 제기한 우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논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Ⅱ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2.1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민주당 정책위원회와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애초 토론회는 지난 4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한 차례 연기됐다.

상법 개정의 최대 쟁점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총주주 이익 보호 의무’를 법에 명시할 것인가 이다. 재계는 그동안 주주 충실의무와 총주주 이익 보호 의무가 상법에 명시되면 소액주주들이 배임죄나 손해배상청구 등의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주들의 요구가 기업의 경영 판단을 지연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국회가 규제보다는 산업 진흥 정책을 입법해야 한다는 요청도 수차례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토론회에서 대부분 개인투자자를 대변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기업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기업을 구성하는 실제 소유자인 주주가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업을 믿고 자본시장에 투자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들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기업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지속성장을 유지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있다”며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익을 보는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가 부당하지 않은 공정한 시장을 어떻게 만들지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19일 이정문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 개정안은 상법 제382조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이사는 직무 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외에 ▲전자주주총회 도입 ▲’사외이사’ 명칭 ‘독립이사’로 변경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예외 조항 삭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담았다.

◇재계 국회로 불렀지만, 반대 의견 그대로

재계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다. 김동욱 현대차(005380) 부사장은 해외 행동주의 펀드 앨리엇이 2019년 현대차에 과도한 배당을 요구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주주 충실의무가 기업의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앨리엇은 1주당 2만2000원, 전체 금액 5조8000억원을 배당으로 요구했다. 이는 현대차의 2018년 당기순이익(1조6450억원)의 3.6배에 해당한다.

김 부사장은 “앨리엇 사례는 회사의 설비와 연구개발, 인재 고용 등 장기적인 미래비전보다 배당 확대를 위한 단기적인 이익 실현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며 “이런 가운데 상법 개정안에 주주 충실의무 이야기가 나와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희 SK(034730)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은 “(국내 증시가) 밸류업(가치 상승)을 이루려면 기술 경쟁력과 원자재 수급, 유통망 경쟁력, 투명한 이사회, 혁신적 기업 문화, 증시 자체의 유동성 등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요소의 결과물인데 상법 개정이 어떤 걸 개선하려는 것인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로 갔다고 알고 있는데, 엔비디아나 구글 이런 곳을 보면 거대 자본으로 R&D를 열심히 하고 세계 시장을 석권해 주가가 폭등하는 경향성을 본 것”이라며 “결국 주가를 좌우하고, 주식시장 전체가 좋아지게 하는 것은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李 “상장사만 적용 어떠냐” 재계 “거절”

이 대표는 토론 중 재계 측 참석자들에게 “(주주 충실의무를) 상장사만 잘라서 적용하면 동의할 수 있냐”고 물었다. 재계의 반대 의견이 계속되는 것을 의식해서다. 특히 정부·여당이 민주당의 상법 개정에 반대하며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시한 것과도 연결된다. 상법은 국내 모든 기업에 적용되지만, 자본시장법은 상장사에만 적용된다.

재계 측 토론자로 나선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는 이해상충을 방지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해법은 주주 충실의무가 아닌 선관의무 쪽으로 가야 한다”며 “주주 충실의무를 상법에 넣든, 자본시장법에 넣든 마찬가지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도 “지금은 기업의 합병·분할에서 문제가 생기는 만큼, 자본거래 부분으로 한정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 대표도 결국 상법 개정 의지만 피력했다. 이 대표는 “과실을 주주들도 함께 나누고, 국민이 자산 증식 기회를 가지게 되면,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쉽게 하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도 도움될 것”이라며 “국민이 주식시장을 못 믿어서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상법)는 빨리 고치는 게 기업에도, 경제계, 투자자들에게도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했다.

애초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처리 시한을 연내로 잡았던 만큼, 남은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오는 30일 상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다. 앞서 법사위 공청회는 지난 16일 개최 예정이었지만, 비상계엄으로 한 차례 연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