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당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집권당 대표로서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이로써 7.23 전당대회에서 62.8%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한동훈 지도부는 출범 146일만에 막을 내렸다. 2020년 9월 국민의힘 간판을 단 뒤 ‘여섯 번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게 됐다. 당대표와 직무대행 등을 합치면 2년6개월을 갓 넘긴 정부에서 10번째 ‘수장’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직 사퇴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기자회견에서 “최고위원직 사퇴로 최고위가 붕괴돼 더이상 당대표로서 정상적 임무수행이 불가능해졌다”며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 받으신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회견을 앞둔 국회 당대표실 앞 복도에선 친윤계 권성동 원내대표가 배웅차 한 대표를 기다리기도 했다.

한 대표는 “군대를 동원한 불법 계엄을 우리 당이 옹호하는 것처럼 오해 받는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낸 위대한 나라와 국민, 보수의 정신, 우리 당의 성취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윤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찬성하고 ‘찬성 당론’을 요청한 것에 대해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외 당대표 한계 직면… “정치력 부족” 해석도

한 대표 사퇴에는 ‘원외 당대표’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국회의원 자격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하거나 표결을 할 수 없는 위치여서다. 지역구 조직을 통해 내부 세력을 형성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공천권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실제 친한계 현역들도 원외 당대표에 등을 돌리면서, 지도부 붕괴가 현실화했다.

앞서 지난 14일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한 대표와 찬성표 12개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고 한다. 당시 의원들은 의총장에 없던 원외 인사 한 대표를 불러올 것을 요구했고, 권성동 원내대표 요청으로 한 대표가 의총장에 들어섰다.

여기서 한 대표는 “제가 계엄했습니까, 제가 투표를 했습니까”라고 항변했다. 다수 의원은 고성을 지르며 “배신자” “한동훈 (당 대표직에서) 나가라”고 했다. 친윤계 김민전·김재원·인요한 최고위원뿐 아니라 친한계 장동혁·진종오 최고위원조차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당헌당규상 이날부로 지도부가 붕괴된 셈이다.

가결표가 12표밖에 나오지 않은 것도 정치력 부재를 보여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0월 ‘친한계’를 자처하며 한 대표의 ‘만찬 소집’에 응한 20명의 절반 수준이다. 한 대표가 ‘탄핵 찬성 당론’을 제안했지만, 마라톤 의총 끝에 ‘반대 당론’이 유지된 것 역시 치명타가 됐다. 지도부 총사퇴에 73명 의원이 동의해 의결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 비대위… 尹 정부서만 당대표 3명, 비대위원장 4명

향후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당을 이끈다. 새 비상대책위원장이 임명될 때까지 권 원내대표가 당대표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비대위원장 임명권 역시 권 원내대표가 행사한다. 비대위가 들어서면, 윤석열 정부에서만 다섯 번째 ‘비상체제’에 돌입하는 셈이다.

제1야당 민주당이 2022년 8월 이후 ‘이재명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도부를 수차례 바꿨다. 이번 정부에서만 당대표 3명(이준석·김기현·한동훈), 비대위원장 4명(주호영·정진석·한동훈·황우여), 대표 권한대행·직무대행(권성동·윤재옥)이 2명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당을 대표한 인물은 총 8명이며, 이들 중 3명(권성동·윤재옥·한동훈)은 2번씩 수장직을 맡았다. 지도부를 교체한 횟수만 9번이 된다.

◇사무총장 사퇴, 정책위의장도 거취 고심

한 대표가 사퇴하면서, 주요 당직자도 줄줄이 직을 내려놨다. 서범수 사무총장은 이날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혼란한 정국에서 또 다시 탄핵의 심판대에 오르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사의를 표했다. 이어 “당을 새롭게 정비해 혼란한 정국을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며 “악독한 이재명 패거리에 처절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당 3역중 하나로, 한 대표가 지명한 김상훈 정책위의장 거취도 불분명하다. 앞서 김 의장은 탄핵 국면에서 이미 사의를 밝혔지만, 한 대표가 “정책 책임자 역할을 해달라”며 강하게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추가 입장을 표명하진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