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위증교사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일극체제’는 당분간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등 상급심이 남았지만, 이번 판결로 ‘검찰의 정치적 기소’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절대 다수인 열성 당원의 힘을 배경으로 당헌·당규 개정 등 1인 체제를 구축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향후 2심 결과에 따라 ‘친명계 내 대안’을 찾는 물밑 시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이날 오후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변론요구서 제공으로 위증 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이 대표가 증인에게 ‘통상적인 증언 요청’을 했다고 봤다. 반면 위증교사 정범으로 기소된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 출신 김진성 씨에게는 위증 일부가 인정돼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이 대표는 향후 위증교사 상급심은 물론, 선거법 재판에서도 ‘유·무죄’를 다투는 방식을 고수할 방침이다. 혐의 일부를 인정하고 감형을 받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전략이다. 그간 당 지도부 인사들이 이 대표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부를 압박하는 발언도 여러 차례 했었다. 당 일각에선 양형 가중 사유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이 대표는 기소된 8개 사건에 대해 ‘완전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당내 ‘플랜B’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이 대표가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대안을 거론했다가는 ‘배신자’로 낙인 찍힐 수 있어서다. 원외 비주류 잠룡들도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다. 김건희 여사 특검을 촉구하는 장외집회 및 1인시위에 동참하며 대여(對與) 공세로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이다.
◇당원 과반이 ‘개딸’, 당헌·당규로 1인체제 구축
이런 ‘일극체제’가 가능한 건 당의 구조 때문이다. 민주당 당비를 내는 250만 권리당원 중 최소 절반은 이 대표가 출마했던 지난 대선을 전후해 입당했다. 이른바 ‘이재명 팬덤’이다. 당은 각종 선거 때 이들의 표 가치를 높이도록 당헌·당규를 여러 번 고쳤다. 야당 대표가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해도, 반대파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해 말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 권한을 3배 높이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2대 총선을 앞두고선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 대상자의 경선 점수 30%를 깎도록 당헌·당규를 고쳤다. 이듬해 비명계 현역 대다수가 하위 20%에 들었고, 공천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총선 이후엔 국회의장단 및 원내대표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를 20% 반영하는 내용도 추가했다.
주류 현역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도 이런 구조를 뒷받침한다. 차기 총선 공천에서 고지를 점하려면, 주류 친명계가 당권을 쥐어야 한다. 당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 대표가 2심에서 징역형이 확정되더라도, 이들은 ‘내부 주자’를 세워 당내 기득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원외 주자들의 세력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민주당 주류 세력 입장에선 비명계로 당·대권이 넘어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설령 이 대표 선거법 위반 형이 확정돼 출마가 막히더라도 친명계는 자기들 내부에서 대안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친명계의 전폭적 지원 없이 대선 본선은 불가능한 구조”라며 “주류는 자기들 입지가 좁아질 위험한 선택보다는 ‘자신들이 동의할 수 있는’ 플랜B를 찾아 총선 공천권을 사수할 것”이라고 했다.
◇잠룡들, 2심 후 여론 바뀌면 움직일 것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항소심을 주목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대표에 대해 ‘교사의 고의’가 없다고 봤지만, 정작 위증 혐의로 기소된 김 씨는 벌금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2심에서 판결 뒤집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2심 판결은 사법부의 영역인 만큼, 정치권도 무죄를 확신하긴 어렵다. 게다가 지난 15일 1심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2심도 진행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2심 판결 이후 여론조사 추이가 변곡점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당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비명이든 친명이든 움직이면 다 죽는다”면서 “무(無)오류를 주장하는 이 대표 앞에서 ‘플랜B’를 언급하는 순간 내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거법 2심에서도 당선무효 수준의 형이 나오고 이후 중도 여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현역 의원들도 그때부터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