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인 노재헌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가 과거 수년 치 결산 공시 보고서를 최근 잇달아 수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성했다가 추징된 비자금 2628억원과 별도로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관리해 온 드러나지 않은 돈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다.

노재헌 이사장의 누나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이 드러난 데 이어 동아시아문화센터에도 비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왼쪽)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뉴스1

16일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 목록을 보면 동아시아문화센터는 지난 8월29일과 9월20일 두 차례에 걸쳐 2017, 2018, 2020, 2021, 2022, 2023 회계연도 등 6개 결산 공시를 수정했다. 2017, 2020, 2021, 2023년 등 4개 회계연도는 이미 한 차례 공시를 수정해 재공시한 상태에서 다시 고쳤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2012년에 설립한 한중문화센터에서 시작한 재단이다. 주로 노 전 대통령의 대(對)중국 외교를 기리는 평가 사업을 하고 있다. 사무실 주소도 노 대통령이 살던 연희동 건물에 있다.

김옥숙 여사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출연금 147억원을 입금했다. 김 여사는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현금 10억원, 2018년 예·적금 12억원, 2020년 예·적금 95억원, 2021년 예·적금 20억원을 출연했다. 가장 많은 금액인 95억원을 출연한 2020년은 노 이사장이 취임한 해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2023 회계연도 결산에서 기부금 이월 잔액을 0원에서 97억6600만원으로 수정했다. 이 중에는 김 여사가 2020년 기부한 95억원이 포함돼 상속세 및 증여세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다. 공익법인은 출연받은 재산을 3년 이내 공익목적사업에 전부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증여로 간주해 과세당국은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기부금 지출 합계는 약 14억5000만원에 불과한 반면 2023년 12월 기준 기부금 잔액은 97억원에 달했다. 김 여사가 기부한 95억원을 3년 내 공익목적 사업에 전부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초 이월 금액이 없다고 공시했다가 뒤늦게 97억660만원이 남았다고 신고한 것이다.

상당한 자금이 노 관장으로부터도 들어왔는데 센터는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 2021 회계연도까지는 노소영의 출연재산을 현금으로 기재하다가 2022 회계연도부터 예·적금으로 기재했다. 2021 회계연도까지 ‘이사장과의 관계’를 표시하다가 2022 회계연도부터는 관련 항목을 아예 삭제했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설립 당시인 2012년 회계연도 결산에서 ‘노소영 1000만원 현금 출연’을 기재했다가 2013~2015 회계연도 결산에는 출연자를 기재하지 않았다. 2016년 결산에는 ‘노소영 1000만원 현금 출연’에서 금액을 ‘5억원’으로 수정했다.

김 여사의 ‘210억원 차명 보험’ 명의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출연 명단에 포함됐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의 차명계좌 명의인으로 문동휘, 정관희, 이창원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을 공개한 바 있다. 센터는 이들 3인을 출연자로 공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