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1일 현행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대해 “기업의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어서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며 확답을 보류했다. 제도 개선에는 공감하지만, 재계의 불안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국내증시 저평가’가 여야 정치권 핵심 이슈로 부상한 상황에서다.
한 총리는 이날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상법 개정안 대한 정부 입장이 있느냐’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그 문제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병존한다”며 “정부가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고 있고, 경영 환경 위축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면서도 주주를 보호할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해나가겠다”고 했다.
이 의원이 “회사 지분 30%를 가진 지배주주를 위해 70% 일반주주 이익이 침해 받는 것 아니냐”고 재차 묻자, 한 총리는 “의견을 균형 있게 듣고 있다. 그런 우려를 감안해 입장을 정해나가겠다”고만 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낮은 평가를 받는 원인에 대해선 “과거 투자에 역점을 두느라 주주에 대한 환원은 우선 순위가 상당히 낮았기 때문”이라며 “구조적 문제인 북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부인 못한다”고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인의 불확실성이 일부 발생한다”며 답변을 시작했다. 그는 “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회사 전체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주주 전체 이익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주주의 이익도 침해하면 안 되고, 소액 주주의 이익도 침해하면 안 된다. 결국 중장기적인 작업”이라며 재계의 불안 요소를 거듭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이어 “여러 법률 간 해석과 판례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면서 “상법을 바꾸는 것만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지, 다른 법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의견 듣고 다양하게 검토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고, 정부 입장을 조만간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측의 이런 발언이 주목 받는 건 정치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그간 재계와 보수 정치권 모두 ‘경영 활동 위축’을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여권에서도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여야 대표 회담에서 ‘주식시장의 구조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이 자리에서 소액주주 보호 관련 상법 개정,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한 공감대도 이뤘다고 한다.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국회에 출석해 상법 개정에 동의한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미 21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 부총리 등 정부 측 인사들이 ‘기업의 우려’를 거듭 언급한 것이다. 이 의원은 “정부의 적절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상법 개정 근본적 해법”이라고 했다.
한편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이후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발의 된 상법 개정안은 15건이다. 그 외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일명 ‘개미투자자보호법’(상장사 지배구조 특례법 제정안)도 발의됐다. 골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의 이익에서 전체 주주까지 확대하고,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내용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