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후 일주일째를 맞았지만 주요 당직 인선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공언한 ‘제3자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당내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정치권에서는 친윤계(친윤석열계)와의 마찰, ‘원외 당대표’로서의 한계 등으로 한 대표의 당 장악력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 교체냐, 유임이냐

31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한 대표는 취임 후 당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에 ‘재선’ 서범수(울산 울주) 의원, 당대표 비서실장에 박정하 의원(강원 원주시갑)을 각각 임명했다. 두 사람 모두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로 분류된다.

그러나 내부 잡음이 나오는 정책위의장 인선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심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윤계 측은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임명된 지 2개월 정도라는 점, 당 화합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며 정 의장 유임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정 의장도 1년 임기를 채우겠다는 취지의 뜻을 주변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친한계 측은 신임 당대표가 취임할 경우 기존 임명직 당직자들은 일괄 사임하는 게 관례라는 점을 들며 정 의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또 정책위의장 임면권을 당대표가 갖고 있다며 ‘인선은 원내대표와의 협의 사안’이라는 친윤계 주장에도 반박하고 있다.

한 대표 비서실장인 박 의원은 지난 2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정 의장 유임 여부에 대해 당내 변화를 강조하며 “백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했다.

특히 정책위의장 인선은 지도부 장악력과도 연관된다. 당 지도부 9명 중 한 대표를 비롯해 장동혁 최고위원과 진종오 청년 최고위원, 임명 예정인 지명직 최고위원 등 친한계가 4명, 추경호 원내대표와 김재원·인요한·김민전 최고위원 등 친윤계가 4명인 상황에서 친한계로선 정책위의장을 교체해야 지도부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

‘원외’ 집권당 대표 입장에서 각종 입법과 정책 수립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선 긴밀히 소통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정책위의장 확보가 절실하다. ‘한동훈 지도부’와 대통령실·정부 간 정책 주도권을 쥐기 위한 신경전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 28일 예정됐던 첫 고위당정협의회가 연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한 대표 측은 정책위의장 인선이 자칫 당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강한 압박 없이 정 의장의 결단을 바라는 모습이다. 친한계 한 인사는 “새로운 당대표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그게 순리라고 본다”며 “(정 의장이) 현명한 판단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정점식 정책위의장 등이 30일 '방송 4법' 중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 표결이 시작되자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시위하고 있다. /뉴스1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 속도조절

한 대표는 당 대표 출마에 나서며 공약했던 ‘제3자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 발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9일 MBN과의 인터뷰에서도 “제3자 특검법,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특검을 말하는 것인데 이 정도로 해야 국민께서 오해를 푸실 것이고 당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잘 설명하려고 한다”며 “저는 발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특검법 논의는 당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다. 한 대표 취임 직후 야당의 ‘방송4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에 당력을 집중하면서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국회 상황과 관계없이 ‘제3자 특검법’ 발의조차 없어 ‘후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친한계 측은 법안 발의보다 의원총회를 통해 총의를 모으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를 제안한 배경이 민주당에 끌려다니지 않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것인 만큼 먼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이 예고한 ‘특검법 재발의안’을 살펴보고 추후 대응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先 수사 後 특검 검토’ 입장을 고수해온 대통령실과 친윤계 설득 작업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최근 채상병 사망 사건 관련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관련 내용을 제보한 김규현 변호사와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만난 것을 두고 ‘사기 탄핵 게이트’라며 반격을 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당이 채상병 특검법 수정안을 제시하면 당력이 분산되고 메시지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민주당은 다음 달 채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해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무산된 법안보다 강력한 특검법을 재발의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채상병 사망 사건 핵심 피의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 의혹’을 추가로 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과 법안 폐기가 반복되며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어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특검법’ 수정안으로 여당과 협상에 나서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한 대표에 대한 전당대회 유권자들의 기대감은 민심과 소통해 결과물을 내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뭘 하겠다는 비전을 보줘야 하고 한동훈표 아젠다가 나와야 하는데 윤곽이 흐려진 것 같다”며 “(공언한 대로) 제3자 특검법을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정책위의장 인선에 대해선 “그게(정책위의장 자리)없으면 한 대표는 당 정책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정책 이슈를 주도해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 부분은 중요한 사안”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