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권의 ‘특검 정국’이 더욱 격랑에 빠질 전망이다. ‘VIP 격노설’, 즉 윗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윤 대통령 입장에선 일단 ‘1차 방어’를 한 것이지만, 재의결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당 지지세와 여론의 비판 수위가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에서 상처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21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설명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이유’을 보면 상당 부분은 헌법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검경 등 행정부 권한인 수사권을 국회 입법으로 이뤄진 특검에 넘기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상 ‘예외적 경우’로, 반드시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채상병 사망 사건은 경찰과 공수처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수사가 미진하거나 공정성·객관성이 의심될 때 실시하는 특검의 본래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했다. 또 특별검사를 사실상 야당 입맛대로 고를 수 밖에 없다는 구조라는 점도 지적하면서 특검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 “헌법 수호하고 특검 도입 취지 지켰다”

이날 거부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윤 대통령은 특검법을 다시 한 번 표결에 붙일 기회를 갖게 됐다. 사실상 재의결 과정이 ‘본게임’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번에 부결될 경우 특검법안은 폐기된다.

국회법상 특검법이 재의결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하면 재적 의원은 총 295명으로 전원 표결에 참석하면 재의결 정족수는 197명이다. 이 가운데 범야권은 180명에 달한다.

여권에서 17표가 찬성해야 가결시킬 수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민의힘으로서는 표결 불참과 반란표를 모두 막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번 거부권 행사로 윤 대통령은 그동안 강조한 헌법정신과 특검제도 도입 취지를 지켰다는 명분도 확보하게 됐다.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정치행위’에 해당된다고 보는 시각에 일관성을 유지한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경우 그동안 윤 대통령이 주장한 거부 명분을 뒤집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채상병 특검법은 거대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25년간 처리된 13회 특검법이 모두 여야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실장이 “헌법상 삼권분립을 지키기 위한 국회 및 헙법 관행이다. 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을 수용하는 것은 여야가 수십년간 지켜온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과 일치한다.

◇ “특검 정국으로 ‘탄핵 정국’ 빌미 줬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당분간 거대 야당이 주도하는 ‘특검 정국’ 대응에 화력을 집중하면서 끌려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은 뒤로 물러나고 정쟁만 앞에 서는 형국이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만약 재의결에서 특검법안이 통과되면 윤 대통령은 여당에서도 지지받지 못했다는 성적표를 들고 앞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여권 내에서 이탈표가 17표 이상 나왔다는 의미라서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끌어내릴 명분으로 삼는다는 점도 불편한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채상병 특검법 거부시 탄핵 사유”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특검 정국을 종국에는 탄핵 정국으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채상병 특검 정국은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을 밀어붙이기로 공식화한 상태다.

이 사건은 법에 따라 경찰에 이첩하려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을 윗선이 저지(”이러면 누가 지휘를 하려고 하겠나”)하면서 일파만파 커졌다. 국민들의 관심도 이 과정에서 실제 윤 대통령이 저지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과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팀 수사팀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사실상 정치권 및 법조계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것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 특검이 불러올 긍정적·부정적 효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특검이 진실규명이라는 본래 의도와 달리 ‘정치 공세’이자 정치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판단도 거부권 행사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