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60) 대표가 인천 계양을에 단수 공천되면서 이 대표와 원희룡(60)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명·룡 대전’이 성사됐다. 야권의 유력 차기 대선 주자와 ‘대장동 일타강사’로 불린 여권 잠룡의 맞대결이다. 인천 계양을이 4·10 총선 최대 관심지로 떠올랐다.
◇ 총선 D-39일, 10%p 육박한 지지율 격차
이 대표는 중앙대 법대 82학번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수원을 수료한 후 경기 성남에서 개업해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시민운동에 참여했고,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민선 5·6기 경기도 성남시장을 역임하였고, 지난 2018년 남 원 정 주축인 남경필 경기지사를 꺾고 제34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이름을 알렸다.
원 전 장관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학력고사·사법고시 수석이라는 ‘천재’ 이미지가 강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3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친 후 서울 양천갑에서 제16~18대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을 지냈고, 고향인 제주도에서 제37·38대 도지사를 지냈다. 정치 경력은 길지만, 제주 출신으로 ‘소수 지역’이라는 게 한계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까지 남은 한 달여 동안 원 전 장관이 이 대표와 얼마만큼 격차를 줄일 지를 주목하고 있다. 인천 계양을의 역대 선거 전적을 보면 민주당 아성이다. 지역구가 지난 2004년 신설된 이후 2010년 보궐선거 한 번을 제외하면 민주당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 총선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도 윤석열 후보가 진 곳이다.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 대표는 55.24%를 얻어 44.75%를 획득한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에 승리했다. 미디어 토마토가 인천 계양을 거주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2월 13~14일 진행한 여론조사(ARS 방식)에 따르면 응답자 중 49.1%는 이 대표, 41.0%는 원 전 장관을 지지했다.
앞서 인천일보의 의뢰를 받아 한길리서치가 인천 계양을 거주 18세 이상 유권자 502명을 대상으로 2월 1~2일 이틀간 진행한 여론조사(무선 ARS 방식)에서 이 대표 지지를 밝힌 응답자가 50.7%, 원 전 장관 34.3%였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자 줄었지만, 여전히 이 대표가 우세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 결국은 인천 ‘바닥 민심(民心)’
이 지역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아 출렁이면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원 전 장관은 ‘이재명 저격’ 보다는 지역 민심을 파고들 생활공약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원 전 장관이 내세우는 공약은 서울지하철 9호선을 계양구 동양동을 거쳐 박촌역까지 연장시키고, 노후 아파트 재건축 시 종(種)상향으로 용적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계양 테크노밸리에 수영장, 키즈카페 등을 포함한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콘텐츠 창작 캠퍼스를 조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원 장관은 자신의 차량도 인천에서 생산한 GM대우차로 바꾸고, 인천 계양의 출신 축구 스타 이천수(43)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했다.
이 대표는 차분하게 바닥 민심을 다독이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원 전 장관이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함께 지역을 찾은 지난 26일 이 대표는 인천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를 만나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짚었다. 인천은 전세사기 피해가 극심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당 대표로서 전국 단위 유세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지역에 올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지역구 활동을 시작한 만큼, 새로운 공약을 내세우기 보다는 과거 공약의 연속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그 당시 계양테크노밸리 제2판교테크노밸리로 조성, 경인아라뱃길 수변 관광지 조성, 귤현 탄약고 주변 개발 제한 완화,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D) Y자 노선 원안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 양 쪽 모두 정치 생명 건 한판 승부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원 전 장관은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친윤석열계 인사들의 불출마·험지 출마를 요구할 때 정부 인사로는 처음 이 대표와 맞붙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두고 원 전 장관이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다지려는 선택이란 분석이 나왔다. 원 전 장관에게 이번 선거는 패배해도 명분을 얻는 ‘남는 장사’라는 분석이 있지만 반대로 원 전 지사거 대선 후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번 총선 승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정치 생명을 걸고 총선에서 맞붙은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이낙연 민주당 선대위원장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정치 1번지 종로 대결이 있다. 당시 종로가 지역구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여야 대표 인사의 빅매치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최장수 국무총리였던 이 위원장과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인 황 대표의 대결은 총리 대결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결과적으로 이 위원장이 20%포인트 넘는 득표 차로 승리했다.
과거의 빅매치로는 지난 2008년 정몽준-정동영 대결이 있다.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텃밭인 울산 동구를, 직전 해인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전북 전주 덕진을 각각 버리고 서울 동작을에서 맞대결했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54.4%를 득표하며 승리했다. 2011년 4·27 재보선 때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경기 분당을에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붙었다. 분당은 보수정당의 안방이었는데, 손 대표가 승리했다.
경제 정책을 두고 이 대표와 원 전 장관은 과거 지역화폐를 두고 대립한 적이 있다. 2022년 대선 경선 당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는 예산낭비”란 결론의 보고서를 내자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가 “엉터리 보고서”라고 비난하자, 원 전 장관(당시 제주지사)은 “전문가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역화폐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원 전 장관과 이 대표는 찬성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원 전 장관은 그 당시 지역화폐를 상품권에 한정하지 말고 활성화할 것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