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쿠바가 외교 관계 수립을 전격 발표했다. 양국 수교는 65년 만이다. 이날 수교 수립 소식은 예고 없이 한밤에 깜짝 발표됐다. 쿠바를 향해 오랜 기간 공들여온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쿠바의 ‘형제국’으로 여겨졌던 북한은 이번 소식에 ‘한·중 수교’ 급의 충격을 받으리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으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5월 1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이 쿠바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

◇ 韓·쿠바 한밤 깜짝 수교 합의… 193번째 수교국

15일 정부에 따르면, 외교부는 전날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중남미 카리브 지역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은 한국의 중남미 외교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한국의 외교 지평을 더욱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쿠바 외교부(MINREX) 역시 같은날 성명을 통해 한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 사실을 발표했다. 쿠바 정부는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 국제법, 그리고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서 확립된 정신과 규범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으로 등극했다. 한국이 아직 수교하지 않은 유엔 회원국 중에는 이제 시리아만 남게 됐다.

이번 양국 수교 협의는 그간 극도의 보안 아래 극비리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쿠바 측이 한국과의 수교 협의가 공개되는 데 매우 민감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외교부 청사 전경. /뉴스1

◇ 1959년 이후 단절된 쿠바, 2000년대 ‘외교’ 문 두드려

한국에게 쿠바와의 관계 개선 추진은 길게는 2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기나긴 ‘외교 숙원’으로 여겨진다. 쿠바는 1959년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뒤 일절 교류를 끊고 국제 무대에서의 접촉도 삼갔다. 냉전 시기 지속되던 양국 간 냉기류는 1999년 한국이 유엔 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우리 정부가 쿠파에 수교 교섭을 처음으로 공식 제안했고,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2015년 교황청의 중재로 쿠바와 국교 정상화 절차를 마무리한 이후 한국도 쿠바와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속도를 내기 시작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5일(현지 시각)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쿠바 컨벤션 궁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이 양국간 첫 공식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들어 쿠바와의 관계개선 드라이브를 한층 강화하면서 다시 논의에 동력이 붙었다. 특히 한국과 쿠바가 나란히 참석하는 다자회의 계기마다 꾸준히 문을 두드린 끝에 고위·실무급 접촉이 이어지며 몇 차례의 중요한 모멘텀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개최된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와 각료회의에 참석하면서 호세피나 비달 쿠바 외교 차관을 만나 양국 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같은 해 9월에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양국 인사가 나란히 참석했는데, 이 역시 또 한 번의 결정적 모멘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이 모두 참여하는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FEALAC) 같은 다자회의 계기로 실무급 당국자들도 비공개로 상호 방문을 이어왔다.

그간 한국과 쿠바가 문화·인적 교류, 개발 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맞손을 잡아온 것도 이번 수교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배우 이민호·윤상현 등 한국 드라마 스타와 방탄소년단(BTS) 등 K-팝이 인기를 끄는 등 쿠바 내에 퍼진 한류 영향도 한몫을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018년 11월 평양 국제비행장에서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는 모습. /뉴스1

◇ “한·중 수교급 충격될 것” ‘형제국’ 北 반응 주목

한편 한국·쿠바의 수교 합의로 북한이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데, 핵심 우방 중 하나인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1992년 ‘한·중 수교’와 맞먹는 급의 충격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만간 북한이 한·쿠바 수교와 관련해 공식 입장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어,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쿠바를 포함해 193개국과 수교하고 있고, 북한은 159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 관계 없이 한국과 단독으로 수교한 국가는 36개국이다. 반면 한국과의 외교 관계없이 북한과 수교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 단 두 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