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64)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교실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의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갈 혁신위원장으로 인요한 교수를 모시고자 한다"며 "(인요한 혁신위는) 위원회 구성·범위·기한·안건 등에 있어서 전권을 갖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 교수는 전남 순천 출생으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한국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1991년부터 32년간 신촌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으로 근무해 왔고, 의료 지원을 위해 29차례 방북한 경력도 있다.
특히 의대 재학시절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 잠입해 통역을 맡아 당시 광주 상황을 외신을 통해 알리면서 당시 군사정권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오늘날 119구급차의 모태가 된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지역 응급시스템을 개선한 공로로 2012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다.
인 교수의 가문은 4대째 한국에 헌신하고 있다. 1895년 4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선교사 유진 벨은 인 교수의 증조할아버지로,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학교와 병원을 설립했다. 유진 벨의 아들이자 인 교수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은 백범 김구 선생 주치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지만 22살 때 한국으로 와 48년간 전주·군산 지역에서 선교 활동과 함께 교육·의료봉사를 이어갔다.
윌리엄 린튼의 3남인 휴 린튼이 인 교수의 아버지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휴 린튼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 장교로 복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인 교수의 형 스티브 린튼도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벨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인 교수의 영문 이름은 존 린튼이다.
정치와의 인연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인 교수는 "국가가 사업을 하면 물론 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의료보험은 소외된 계층 위주로 가고 서비스를 더 제공하려면 반드시 영리법인(병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발언해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총선 '서대문' 지역구 영입 대상으로 거론됐던 인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에 대해 "전라도 말로 어문짓거리(엉뚱한 일) 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며 "만약 정치를 하게 된다면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는다. 특히 인 교수가 DJ를 직접 치료하고 동교동을 드나들면서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DJ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용서와 화합을 실천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오늘날 이런 포용의 정신과 존경받는 행동을 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제자가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인 교수가 당 쇄신의 적임자로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인 교수가 지난 8월 당 공부모임인 '국민공감' 당시 강연자로 나선 것을 언급하면서 "정곡을 찌르고 가감없는 쓴소리를 전해주신 바 있다"며 "정치 개혁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투철한 의지를 갖고 계신 만큼 우리 국민의힘을 보다 신뢰받는 정당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인 교수가 최적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가람 최고위원도 "오늘 우리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나선다. 그와 그 가족은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에서 기여해 왔다"며 "대한민국은, 국민의힘은 다시 한 번 변곡점 위에 서 있다. 다시 한 번 변화와 혁신을 선택한다"고 했다.
특히 당 혁신위원장 임명이 대통령실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실과의 사전 교감은) 없었다"며 "실무자가 포함된 자리에서 브레인 스토밍할 때 아이디어로 던져졌다"며 "인재 풀을 제공받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과 같은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전혀 그런 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당 내부에서 움직였다"고 말했다.
앞서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인 교수가 얼마 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대담도 했다. 어떤 방향성, 의도를 갖고 된 카드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대통령실과의 연관성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인품이 좋은 인사를 위원장에 앉힌 것과 직접 칼을 대면서 당을 쇄신시키는 건 다른 문제라고 평가한다.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인 교수가 '정치적 수술'을 잘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이미 흔들린 당 지도부 수장이 '혁신위 전권'을 준다고 한들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이번 혁신위원회는 김기현 대표를 향한 비판의 관점을 돌리기 위해 일단 띄우고 본 하나의 기구에 불과하다"며 "최근에 실패했던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인 교수가 보수우파 쪽 성향을 밝혀왔고,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인사"라면서도 "총선을 6개월 앞두고 '대통령실은 공천에서 손을 떼시라', '국민경선 도입하겠다' 등과 같은 혁신안까지 낼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본인에게 향할 비난의 화살을 막기 위해 '들러리'로 올린 게 혁신위의 존재"라며 "지금 국민의힘에는 적재적소로 필요한 곳에 칼을 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인 교수가 그 역할을 할진 잘 모르겠다. 이건 인 교수의 인품과 걸어온 행적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증상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더 넓은 시야로 정치적 수술을 할 인물이 이번 혁신위에 필요했다"며 "혁신위가 잘 될지는 조금 지켜봐야 하겠지만, 총선까지 6개월도 안 남은 상황이라 당 체질을 바꿀 혁신안이 나올지는 회의적"이라고 했다.